“축하한다. 사랑해!” 아들을 출산한 며느리에게 꽃바구니를 선사한 지 벌써 40일째. 난산으로 힘들었던 것도 잊고. 끙끙거리며 아이를 돌보는 새내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랬겠지?’ 서투른 몸짓. 시원찮은 손놀림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 사랑이라지만 손주 사랑에 비할 수 있을까? 손주 한 번 안아 봐.” 라고 하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새내기 할머니인지라 손주가 사랑스럽고 그지없이 예쁘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과제가 주어진 느낌이다. 좋은 성품으로 자라야 할 텐데... 29년 전. 아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남편과 함께 몇 날밤을 고민한 적이 있다. 작명가를 찾을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내 아이에 대한 꿈과 바람이 그 이름에 담겨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남편과 합의점을 찾았다. 바로 사람의 성품이 미래를 결정하고 행복을 결정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賢)자를 써서 이것을 이루라는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다.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직 순종과 겸손의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성품이기에 우리 부부는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지금. 29년이 흘렀지만 이름처럼 끊임없이 성품을 가꾸어 가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의 아들도 기대해 본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참된 위대함은 그가 처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한 인간의 위대함은 그의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부자가 되거나 일등이 될 수는 없지만 위대하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자신이 선택하기만 하면 스스로의 성품을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성품을 가꾼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성품을 추구하는 것은 가치 있고 값진 일인 것이다. 좋은 성품은 우리가 꿈꾸는 성공과 성취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도 맺게 해 준다. 존 우든은 “정상에 오르는 데는 능력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정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품은 우리의 행복. 인간관계. 성공. 성취.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어떤 면에서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다가 이 땅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도 동행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성품이다. 우리의 성품에 따라 우리 영혼의 질(quality)이 달라진다. 그래서 성품은 참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성품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요. 우리의 미래를 알려주는 예고편과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좋은 성품을 배우고 가꾸어야 한다. 좋은 성품은 신비한 자원과 같고 신의 복을 끌어 오는 자석과 같다. 마치 꽃의 향기가 벌과 나비를 불러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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