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을 받았는데요… 때깔이…” 갑자기 걸려온 고객 전화 첫 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녁을 먹던 중이었는데 단골 고객의 이름이 떠서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곶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전화를 받아본 것이 한두 번이..
농업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입니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수확하는 과정은 같을지 몰라도,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도구, 그리고 시장의 흐름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제 농업은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이야기이고 경험..
함정농은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함양의 자발적인 농업인 단체입니다. 해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농업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역할입니다. 올해의 3, 4월에 인스타그램 릴스, 스레드 교육이 예정되어있고, 하..
우수에는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데, 비는 커녕 엄천강이 짱짱 얼어 붙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봄이 올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지난해 이 맘때는 산책길에 개구리 울음소리 들렸는데, 오늘은 어찌나 바람이 매서운지 산책길이 고난의 행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매화 ..
농부가 도대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어린이 영어동화 서점을 운영하다가 이십여 년 전 귀농한 이후,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제는 손에 꼽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곶감 농사부터 시작해서 떡카페 운영, 갤러리 운영, 온..
우와~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요즘 핫한 스레드에서 스친이 올린 짧은 영상을 보는데,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이 귀여운 강아지로 변신하는 마술 같은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은 챗지피티 SORA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롬프트 몇 번 수정해가며 만들었답니다. 세상에~ 몇 마디 ..
갤러리 귀함이 함양에서 작품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오픈과 동시 권현숙 선생이 지도하는 어반 스케치 회원들의 수채화 전시를 시작으로, 최상두 생태 사진전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중견작가 4인이 참여하는 여유자작 판화전 등 다양한 전시 일정이 계획되어 있으며..
며칠 전, 스레드(threads)라는 새로운 SNS를 접했습니다. 낯선 플랫폼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사진과 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이라면, 스레드는 그 반대입니다. 글을 앞세워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사진은 보조의 역할에 머뭅니다. 이 모습이 왠지 모르게 반갑..
“아이코~ 올해는 설이 빨라서 걱정이야”칠선계곡에서 곶감을 만드는 친구 허농부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묻어납니다. 매년 이맘때면 설명절이 얼마 안 남았는데 주문이 없다며 푸념하곤 하지만, 설이 점점 다가오면 말투가 185도 달라집니다. “곶감이 동이 나서 아쉽네~ 주문이..
2024년의 마지막을 넘기며, 지난 한 해는 특히나 길고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말이 우리 일상 속에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안온한 일상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발생한 항공 참사는 그 불안감을 더욱 깊은 슬픔으로 물들였습니다. 수..
덕장에서 곶감을 내리며 당도를 측정해 보니 47브릭스가 나옵니다. 그 숫자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안도합니다. 이제 하우스에서 며칠만 더 후숙시키면 55브릭스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앞의 숫자가 새삼 마음을 울립니다. 완벽에 가까운 55브릭스에는 닿지 ..
기온이 부쩍 내려가 벽난로에 불을 넣었습니다. 벽난로에 장작을 넣는 일은 번거롭지만,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온기는 무엇보다 따뜻하고 정겹습니다. 불꽃이 춤을 추듯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까지 온기가 번져오는 듯합니다. 겨울이란 이..
시골에선 그림 한 점, 시 한 줄을 마주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의 화려한 갤러리, 북적이는 전시장과는 거리가 먼 시골 사람들에게 문화는 마치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사람들이 예술을 덜 사랑하거나, 아름다움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오..
고향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부산행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한때는 익숙했던 이 길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내가 떠나온 뒤로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영원히 그대로일 것 같던 공간은 ..
KTV 귀농 다큐를 3박4일 촬영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EBS 극한직업 촬영하고 곶감 판매에 재미를 본 터라 섭외가 들어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했습니다. 속으로 (올해는 뭐 없나?)하던 차였거든요.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이번 촬영은 대타였습니다. 예약한 사람이 ..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가 있지만, 내가 가진 이 특별한 장애를 <선구불기증>이라 정의해 봅니다. 이 신조어의 뜻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합니다. “선천적으로 구제 불능인 기억 상실증”, 곧 사람이 잘 기억나지 않는,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 결핍을 뜻합니다. ..
가을이 깊어가고 국화 향 그윽한 시기에 또다시 곶감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감을 깎아줄 사람을 구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올해는 함양군에서 알선해준 계절 근로자들 활약으로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가을빛 속에 감을 깎는 손길이 이들의..
올 가을은 예년보다 천천히, 신중히 물들기 시작하네요. 마치 자연이 계절을 지연시키며 무언가 깊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은 폭염이 지루하고 집요하게 머물렀지요. 끝없는 폭염에 우울증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국화와 장미는 그 영향에 지쳐 기운을..
가을의 깊은 호흡이 감나무 가지마다 여문 감을 매달고, 그 첫 수확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제부터 따기 시작한 감들은 오늘 처음으로 저온 창고에 안착하였습니다. 한 해의 시작과 마무리가 오묘하게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농부의 마음은 땅과 하늘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함떡 카페의 문을 드디어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나 미루었던 오픈 소식을 이번엔 거짓 없이 전하게 되어 기쁨과 긴장이 교차하는 마음입니다. 카페 인테리어가 마무리되고, 함떡 제조 과정도 착착 진행되면서 드디어 가오픈을 거쳐 10월 29일 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