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 1)사람이 돈이다. 저명인사 지역마케팅은 2)예술가들의 고향 통영. 그들의 발자취 3)미국의 샐러드볼 살리나스와 존 스타인벡 4)헤밍웨이의 고향 오크파크 5)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6)함양의 숨은 저명인사 찾기 3)미국의 샐러드볼 살리나스시와 존 스타인벡 저명인사를 내세운 지역 마케팅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현재 세계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뉴욕의 경우 최초의 도시 브랜딩과 문화산업의 성공사례로 불리는 ‘아이러브뉴욕(I♥NY)’이라는 로고를 만들어 경제불황을 겪던 뉴욕의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었다. 로고 하나가 뉴욕의 문화를 바꾸는 힘을 가진 것이다. 미국의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Salinas)시. 인구 15만명의 대표적인 농업도시로 살리나스는 신선 채소 등 농업이 주를 이루는 자연환경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정작 살리나스시의 숨은 진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대문호 존 스타인벡(Jhon Steinbeck)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살리나스시도 이를 십분 활용해 농업이 주를 이루는 도시이미지를 관광산업 등 3차 산업 도시로 접목해 나가고 있다. 살리나스는 지역주민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존 스타인벡 국립센터를 만들고 그의 생가를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스타인벡을 내세운 다양한 축제 등을 기획해 지역 이미지 재고와 함께 관광 상품화 해 나가고 있다. 대문호 존 스타인벡은?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대문호 존 스타인벡(Jhon Steinbeck. 1902~1968). 그는 살리나스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까지 보냈으며 그가 자란 살리나스를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제임스 딘이 출연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영화 ‘에덴의 동쪽’은 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살리나스는 이 영화의 배경도시이기도 하다. 1919년 스탠포드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가난했기에 목장과 공장 등에서 일해야만 했던 그는 학교생활 틈틈이 단편소설과 시를 발표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그는 1939년 문제작이자 역작인 ‘분노의 포도’를 발표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아픈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대표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로 꼽히게 된다. 스타인벡이 문학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일선 학교에서도 그의 책을 읽게 됐지만 대중적으로 그가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70년대 우표에 스타인벡의 얼굴이 들어가면서 부터이다. 특히 일본에서 매우 유명해져서 스타인벡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작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 대학에선 180명 정도의 교수가 스타인벡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살리나스 주민들 역시 그제야 스타인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한 학습을 시작하게 됐다. 1970년대 전국 우표가 발행되면서 살리나스에서도 스타인벡을 재조명할 계기가 마련됐다. 살리나스의 중심 존 스타인벡 국립센터 살리나스시의 지역 경제가 발전하면서 정작 다운타운 지역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는 경제적으로 다시 부흥하기 위한 원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시의 해답은 존 스타인벡. 이전인 1980년대부터 시작된 스타인벡 페스티벌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나 축제기간에 거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하게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존 스타인벡 국립센터’를 1998년 건립했다. 건립 이후 연간 약 3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의 주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존 스타인벡 국립센터는 정부 출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센터 뒤편 벽에는 이 센터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미국 도서관이나 센터는 주로 시에서 만들고 운영하며 물론 살리나스시도 센터 운영에 도움을 많이 주지만 시작부터 운영까지 시민들의 자발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됐다. 시가 그렇다고 방관만 한 것은 아니며 공사를 하는데 드는 돈을 채권까지 발행해 가며 주민들에게 빌려주었다. 또 살리나스시는 1960년대 이후로 존 스타인벡 관련 작품을 계속 모아 왔다. 이곳 지하에 수장고에는 수많은 스타인벡 관련 유물들이 전시를 기다리고 있다. 유지 관리는 시민들이 주축이된 자원봉사자들이 하지만 시에서도 시설을 완벽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시에서 수집한 센터에 수집품들을 제공하고 있다. 존 스타인벡 국립센터는 시민들의 다양한 회의와 커뮤니티 모임들이 센터에서 열리는 등 살리나스시의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설계 당시부터 센터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운영진의 월급을 조달하기 위해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어 각종 이벤트 행사나 결혼식 등을 이곳을 활용한다. 센터에서 마케팅 및 지역공동체활성화 업무를 담당하는 에스메랄다 몬테네그로 오웬씨는 “국립센터(national ceter)에서 내셔널(national. 국립)의 개념이 한국과는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내셔널은 전 세계 유일한 스타인벡 센터라는 의미이다. 센터는 살리나스의 심장 같은 곳이며 지역사회의 청소년들. 주민들의 문화예술·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이다. 공적자금의 지원 없이 민간의 힘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인벡 생가의 활용과 자원봉사자들 스타인벡의 생가는 비영리 재단인 ‘벨리 길드(Valley Guild)’에서 매입해 가정식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운영 중이다. 생가를 허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스타인벡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식당을 만들어 그를 알리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재단은 이곳에서 생긴 이윤으로 생가를 관리하고 있다. 생가의 전체적인 외관은 생전 그대로 보전되고 있고 인테리어만 일부 바뀌었다. 식당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일부 시설이 추가됐다. 레스토랑 운영진은 요리사와 설거지담당. 회계 직원을 제외하고는 서빙을 비롯해 시설 관리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다. 100여명의 자원봉사자 중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달에 2~3일씩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스타인벡 생가에서 봉사를 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고 한다. 생가의 정면에는 지역문화재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규제를 한다. 시설물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법규에 맞게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막대한 보조금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약 규정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1층은 식당으로 개조해 미국 전통 가정식을 판매하며 2층은 스타인벡 출생 당시부터 그의 사진 등 다양한 전시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지하실은 기념품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27개국에서 생가를 방문했고 올해도 벌써 28개국이 방문했다. 존스타인벡 하우스 토니 베르나르디 대표는 “때로는 이곳을 방문 한 이후 감격해서 우는 경우도 있다. 당시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인 것 같다”라며 “스타인벡 센터가 더욱 유명하기 때문에 대부분 방문하지만. 이런 곳이 스타인벡 하우스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강대용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지역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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