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을 지나 이제 본격적인 가을에 들어섰다. 가을에 대한 수식어가 많은 것은 그만큼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일년중 최고로 꼽는 10월 상달이 들어있고 이를 작은 봄이라하여 소춘(小春)이라 했으니 가을 속에 봄도 들어 있으니 계절 중에 으뜸임이 분명 한 것 같다. 결실. 수확. 사색. 독서 천고마비의 계절 모두가 가을을 대변하는 말들이지만 단풍 들고 낙엽 지는 계절엔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니 가을은 역시 여행의 계절이다. 봄나들이는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라고 한다면 가을 여행은 가슴으로 느끼는 나들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행의 종류에는 혼자 호젓이 떠나는 여행에서부터 친구. 가족. 모임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 있고 국내. 해외여행과 서민에게는 그림에 떡인 호화 크루즈여행도 있고 실속있는 조촐한 여행도 있다. 어떤 여행이든 여행을 생각하면 이순이 넘은 나이에도 설레임이 있고 행복감을 느낀다. 여행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볼거리와 낯선 문화를 접하면서 추억 거리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백수로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다가 새로 일자리를 구한 곳이 군내 버스회사다. 예전에는 시골에도 인구는 많고 버스는 귀하던 시절이라 운행 횟수가 많지 않아 통학이나 장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만원버스에 시달려야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군내 버스 대합실에는 연세 드신 노인들만 몇몇 횡하니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농촌이 노령화로 쇠락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금은 버스도 많아지고 운행 노선이 늘어 시골 오지에까지 운행되고 있지만 승객 수는 4~5명이 고작이다. 노선도 익힐 겸 차장을 겸해서 버스를 타보면 느림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변에 피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이름 모를 많은 가을꽃들 담장너머로 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며 추수직전인 벼가 익어가는 노란들판과 콩밭사이로 멀쑥하게 자라 고개 숙인 수수며 우리고장 명품인 사과가 빨갛게 익어 명품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름을 갓 지났는데도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멈춘 듯 흐르는 시냇가 풍경이며 간간히 보이는 무심한 허수아비까지 가을 정취를 더해 준다. 기다림이 있는 조는 듯 한가로운 간이 정거장에서 간간히 손들어 버스에 오르는 승객과 경상도 말씨의 투박함 속에서도 정이 듬뿍 담긴 운전기사님들의 친절한 인사가 정겹기만 하다. 승객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라 허리가 굽고 차에 오르기조차 힘드신 모양이다. 저런 몸으로 저 넓은 들판에 곡식을 빼곡히 심어 가꾸어 놓은 것을 보면 감사에 앞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저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몸집보다 더 큰 고추푸대를 가지고 버스를 타신다. 이렇듯 버스 안은 진한 삶의 향기가 피어나는 공간이다. 또 버스 안은 정규방송에 없는 이야기들이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쌀값에서부터 고추. 일반 채소 등 시세 정보가 교환되고 이웃마을의 경조사에서부터 송아지 출산까지 시시콜콜한 말들이 사람 귀한 농촌에 서로가 위안을 주는 대화가 된다. 요즈음은 어린 학생들은 자가용이나 전용 스쿨버스로 통학하기 때문에 끼리끼리 문화는 있어도 다른 사회와는 어울림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옛말에 아이를 현명하게 키우려거든 여행을 보내라고 했든가. 인도 시성 타고르도 어린 시절 정규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 치유 했다고 하니 잠시 짬을 내어 아이와 함께 시골 버스를 같이 타 보는 체험은 어떨까. 이 짧은 여행이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고 시골 서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정서적인 안정감과 예술적 재능을 키워 주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삶이란 편도 승차권뿐이라 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버스여행은 왕복할 수 있는 재미도 누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작은 여행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진지하게 접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올 가을엔 혼자라도 둘이라도 좋다 버스로 작은 여행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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