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7년 전 함양으로 귀촌했습니다. 머리만 과도하게 쓰는 현실에서 벗어나 내 손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 안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귀촌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텃밭을 일궜습니다.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함께 하다 보니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순 없어도 제 옆에 텃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과 충만함을 느꼈습니다. 작은 땅에서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작물이 크는 것을 지켜보고 마지막엔 수확해 내 식탁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은 길고 어렵지만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게 텃밭 생활자가 되어 함양에서 만난 친구들과 텃밭 경험도 나누고 씨앗도 나누며 토종씨앗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이 경험들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만나게 된 건 재작년부터였습니다. 처음 하는 수업인지라 부담도 많았습니다. 텃밭에서 느끼고 발견한 것들을 아이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어떤 것들을 알려주어야 할까? 고민하며 시작한 수업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텃밭을, 자연을 대하는 아이들을 보며 큰 안도감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을 만나고 있고 거기에 교사들이 약간의 안내와 도움을 주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아이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보석같이 반짝이는 능력과 개성들을 잘 끌어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올해도 두 학교에서 텃밭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청하여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첫 수업 시간에 서로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작년에 텃밭 한 켠에 심어놨던 보리에 싹이 나고 추운 겨울을 나고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양배추와 국화도 발견하며 함께 기뻐하였습니다.보통은 새로 밭을 만들기 위해 기계로 땅을 갈아엎고 퇴비 작업을 하지만, 아이들이 활동하는 생태텃밭은 규모가 크지 않고, 한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땅속 생명들을 위해 기계 경운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년과 다른 밭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스스로 밭 모양을 디자인하고 발표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작년엔 처음 밭 그림을 그리는 거라 어려워했던 친구들이 올해는 거침없습니다. “가운데는 공동 텃밭을 해서 꽃을 심어보자”, “고랑으로 걸어 다녀야 하니까 밭 입구를 여기로 하자”, “물이 흐르는 듯한 모양의 밭은 어때?” 직선보다는 곡선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며 작년에 텃밭을 동그랗게 만든 조가 한 조 있었는데, 그게 괜찮아 보였나 봅니다. 이렇게 텃밭의 경험이 한 해 한 해 쌓여감을 느낍니다.종이에 텃밭 모양을 구상했다면 이제는 밭에 그림을 그릴 시간입니다. 기준점을 세워 그림 좀 그리는 친구가 밑그림을 그리고, 그 뒤를 다른 친구들이 선을 따라 밀가루를 솔솔 뿌립니다. 다들 밭의 화가가 된 셈이지요. 나와 친구들이 구상한 걸 밭에 실현시키는 기쁨도 함께 따라옵니다.비록 땀이 흐르고 뜨거운 햇볕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완성! 밭만 만들어 놔도 마음이 든든합니다.이렇게 만들어진 밭에 다양한 씨앗과 모종을 심어 아이들과 키우고 관찰하고 맛볼 생각에 설렙니다. 5월엔 본격적인 여름 절기로 뜨거운 햇살이 예상되지만 틈틈이 잘 쉬며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자라나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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