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밥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만나는 사람과의 처음 인사가 “식사 하셨습니까” 헤어지는 인사 또한 “다음에 밥 한 번 먹어요”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식사를 매 끼니마다 잘 차려서 드시질 못한다.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남이 해주는 밥 아니던가? 그래서 기획한 게 “ 식사하셨어예?” 한 달 한 번 도시락을 만들어 혼자 사는 어르신 집으로 가서 한상에 둘러 앉아 같이 먹고 서로가 말벗이 되는 것이다. <편집자 주>     오랜 시간을 상수도 주부 검침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된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분들이 풀어놓은 인생 이야기를 단독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28개의 마을을 돌면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몇 년 새 소천하신 분도 계시고 요양원으로, 자녀 집으로 거처를 옮겨간 분들도 있다. 더운 날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운 날 추운 데서 일하는 힘든 일이지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중심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인류 역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오른 유명한 등산가인 조지 맬러리에게 사람들이 질문했다. “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데 왜 그렇게 등산을 계속 하십니까?”, “올라가면 내려올 텐데 뭣 하러 힘들게 올라갑니까?” 사람들의 질문에 조지 맬러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내 주위의 사람들도 나에게 질문을 한다. “어떻게 힘든 상수도검침 일을 그렇게 오랜 시간 할 수 있었습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텐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나는 “사람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요”라고 답하고 싶다. 몇 년간 일을 하고 나에게 남은 건 통장 잔고가 아니라 사람이 남았다. 이제는 이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직업의 재정의를 해본다.아침에 집을 나설 때 오늘은 검침을 몇 개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출근을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의 말벗으로 내가 당첨되어서다. “검침하는 여사님을 우리 집 자녀들보다 더 많이 본다.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열두 번을 보니 정이 안 들 수가 있나?”, “박카스 한 병 마시고 좀 쉬었다가 가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검침 아줌마 나랑 같이 커피 한 잔 해요. 오늘 한 잔도 안 마셔서 지금 마시려고 했어”, “내가 오늘 사람 구경을 한 명도 못하고 있었는데 검침 여사님을 보니 이리 반갑네. 바로 가면 내가 섭하다.”다양한 사랑의 언어 덕분에 나의 발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다. 항상 받기만 한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릴까 생각하던 차에 “식사하셨어예?”라는 기획이 나오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어르신 집으로 가서 한 끼를 함께 먹어보자. 혼자 계시는 어르신 말씀이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혼자 먹으니 맛도 없다고, 모름지기 음식은 같이 먹어야 맛있단다. 어르신들은 나에게 겹겹이 쌓인 당신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고 나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고, 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좀 멋있어 보이네.한 끼 식구가 된 첫 번째 어르신은 나에게 감사를 가르쳐 주신 이춘자 할머니다. 할머니는 올해 87세이며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꽃다운 17세에 시집와서 슬하에 7남매를 두셨다. 모든 할머니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상상조차 안 가지만 이춘자 할머니 또한 살아온 인생을 책으로 엮으면 만만치 않은 분량이 나올 정도다. 할머니는 내가 오는 검침일에 맞추어 시원한 음료를 준비하고 항상 기다리는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준다. 7년의 만남 속에서 어르신은 항상 나에게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으셨고 감사하라! 감사하라! 모든 것에 감사하라!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꽃피는 봄이어서 감사하고, 더운 여름이어서 감사하고, 물들어가는 가을이어서 감사하고, 추운 겨울이어서 감사하고…. 어르신을 만나면 감사의 제목은 차고도 넘친다.할머니와 함께 먹으면 좋을 음식을 놓고 고민하다가 봄이라는 계절에 항상 우리를 들뜨게 했던 소풍! 소풍의 하이라이트 김밥이 떠올랐다. 4월의 찬란한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상림, 꽃으로 뒤덮인 봄꽃축제를 할머니 스스로 다닐 수는 없지만 할머니 식탁으로 아름다운 봄을 가져와 차려드리고 싶었다. 나의 진심이 통하기를 바라면서 스타트를 끊어본다.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재료를 다듬고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기쁨을 맛본 시간이었다. 고맙게도 이춘자 할머니는 도시락 뚜껑을 열자 환호하셨고 혼자 먹기 아깝다고 이웃을 초청했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어 막내아들한테 보내고 나하고 전화통화까지 하게 해주었다. 바로 먹을 수 없다며 눈으로 계속 음식을 보고 또 보면서 즐기셨다. 식탁으로 봄을 들이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는 행복한 식탁이었다.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와 나는 식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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