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의 주요현안을 논의할 때 청년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배제돼 왔다. 이미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어렵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정책이 수립되어 정작 미래세대를 책임질 청년들에 대한 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주간함양은 청년 패널들을 직접 모아 지역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청년들 너의 생각이 참 궁금해’ 코너를 기획 보도하고 있다. <편집자 주>
지역을 관통하는 어린이 문화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작년 어린이잔치한마당 행사에 전시된 이 문구는 30년 가까이 이어진 함양 어린이날 행사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보여 준다. “오늘은 진짜 아이가 주인공이다” 준비위원들이 매주 치열하게 회의하며 만들어간 원칙도 결국 이 문장으로 귀결된다. 세 시간뿐이지만,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한 자리에서 함께 웃는다. 4월 16일 주간함양 신문사에서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어린이잔치한마당을 몸소 겪어왔거나 직접 기획에 참여 중인 네 청년, 주간함양 최학수 PD, 김아라 씨, 석가영 씨, 허지원 씨가 모였다. 이들은 어린이날 자체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옛 추억과 오늘의 현실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다.함양에서 30년간 지속해온 ‘어린이잔치한마당’
최학수▶ 어린이잔치한마당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지역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그 마음이 살아있어요. 목적이 뚜렷했거든요. 어린이날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면서 30년 가까이 이어졌어요. 그런데 인원이 진짜 많이 와요. 유동인구 합치면 3천 명까지도 오는 것 같아요. 석가영▶ 맞아요. 외지 아이들이 꽤 많이 참여해서 처음엔 놀랐어요. 거창이나 산청에서도 함양 행사에 참여한다고 하고요. 성남에 사는 아이도 상림 행사에 참여하거든요. 어린이날이다 보니 어버이날을 기념해 부모님을 만나러 오면서 아이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김아라▶ 그게 정말 신기해요. 이 지역에서 동일한 기억을 가진 청년들이 다시 이 지역의 행사를 찾아오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대구에서 자랐는데, 거기는 구마다 두류공원이나 어린이회관처럼 행사 장소가 달라서 지역에서 자란 청년들의 공통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함양은 모든 어린이가 상림 숲에 모여서 행사를 하니까 다들 이 추억을 공유하는 게 부러웠어요. 타 지역에 사는 제 친구들도 부럽다고 말해요. 작년에 참여했는데 특히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를 보면서 새삼 감동적이었어요. 그 순간을 보며 한 동네 공통의 기억이 주는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최학수▶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효율적으로 행사를 구성하게 되고 아이들이 키트를 가져가는 풍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를 깨고 처음 만들 때의 취지를 고민하고 있는 과정 속에 작년 행사를 치렀어요. 허지원▶ 네, 저도 예전에 부스로 참여했었는데 부모님들이 ‘빨리 저 부스도 가’ 하면서 아이와 함께 부스를 쇼핑하듯 돌았어요. 아이들은 상자만 잔뜩 들고 다니고 결과물은 많은데 정작 놀 시간은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 작년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해서 ‘어린이가 그린 하루’를 시도했는데, 동요만 깔아 두고 모기장처럼 둘러친 공간에 아이들을 풀어 놓으니 늦게 와도 누구나 들어가서 놀 수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마지막에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은 정말 어린이가 주인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된 어린이가 기억하는 과거 어린이날 행사
최학수▶ 혹시 접시 두 개 놓고 젓가락으로 콩 옮기기 부스 기억나요? 저는 엉뚱한 젓가락질로도 엄청 빨라서 2등 했는데 ‘그 젓가락질은 무효’라는 말에 바로 실격당했습니다. 그때부터 삐딱해졌다고 농담하곤 해요. 그때 콩 부스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기억이 또렷합니다. 콩 한 알 덕에 어린이날이 평생 각인됐다는 사실이 지금도 신기해요. 석가영▶ 저는 페이스 페인팅이 제일 좋았어요.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게 그 날의 전부인 것처럼 행복했어요. 그리고 풍선을 만들어주던 것도 생각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특별한 풍선의 모양도 아니었는데 그거 하나 받고 싶어서 줄을 섰던 기억이 나요. 둘러앉은 친구들이 굴렁쇠나 투호를 하는 것도 기억나요. 그땐 다볕당에서 행사했어요. 달란트같이 생긴 종이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바꾸던 기억도 나요. 허지원▶ 저는 그 시절 어린이날 행사와 상림공원이 아직도 기억나요. 잔디밭 어디든 돗자리만 펴면 놀이터였던 단순함도 좋아요. 주변에 사주 봐주시는 할아버지가 있었고, 돌이켜 보면 잔디·바람·그림물감이면 하루가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행사는 화려할 필요 없고 놀이 본질만 남으면 된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어요. “지금” 어린이날,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허지원▶ 제가 부스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정신없이 몰리더라고요. 애들보다 엄마들이 ‘빨리 저거 해, 하나 더 챙겨’ 하니까 일찍 와서 다 돌고 나면 나중에 천천히 놀러 나온 애들은 아무것도 못 해요. 샘플로 만들어뒀던 부채도 어느 순간부터 없어져 있더라고요. 작년에 ‘어린이가 그린 하루’를 했을 때는 늦게 오건 일찍 오건 다 참여했어요. 이번에 상림포레페스타에서 만드는 놀이터라던가 대봉산휴양밸리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처럼 모래랑 통나무 놓고 숲놀이터를 만들면 하루 종일 놀아도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어른이 돌이켜 생각하는 어린이날에 받고 싶은 선물
석가영▶ 제가 기억나는 선물은 양면 핑크 필통이에요. 그거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6학년 때 처음 휴대전화 받았을 때는 진짜 좋았어요. 김아라▶ 저는 둘째로 태어나서 첫째오빠 때는 돌잡이에 무엇을 잡았고, 몇 살에 뭘 처음 했고, 이런 걸 엄마가 다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겨주셨는데 저에 대한 거는 기록이 없고 기억도 잘 못하세요. 이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어서 그런지 엄마로부터 이렇게 편지를 받으면 되게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아이들에게 ‘특별한 어린이날’을 만들어주는 법
최학수▶ 그럼 반대로 특별한 어린이날을 만들어 주려면 뭘 해야 할까요. 시대가 너무 가파르게 달라졌잖아요. 과거에는 뭘 쥐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면, 지금 어린이들에게 정말 좋은 건 뭘까요. 요즘 시대상에 맞춰 어린이날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김아라▶ 서울 청계천에서 책을 밖으로 다 꺼내 놓고 시민이 하루 종일 읽게 한 행사가 있었어요. 책이 100% 회수됐다고 들었어요. 상림 잔디에 돗자리 깔고 그림책이랑 동시집을 마음껏 펼쳐 두면 어린이도 휴대폰을 내려놓을 거예요. 모두 책을 보고 있으면 아이도 자연히 따라 읽겠죠. 휴대폰 대신 종이를 만나는 하루, 그 자체가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석가영▶ 맞아요. 미디어를 좀 덜어내 몸으로 노는 체험이 필요해요. 모래랑 통나무로 큰 놀이터를 만들어서 나무 꼬챙이 같은 소품까지 놓아 두면 아이들이 하루 종일 뛰놀아도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페이스 페인팅이나 요술풍선처럼 얼굴에 흔적이 남는 놀이도 꼭 있었으면 해요. 김아라▶ 요즘 초등학생이 휴대폰 게임에 빠져 있는 건 단순히 게임에 중독된 게 아니래요. 친구 집과 거리가 멀다 보니 게임 속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더라고요. 부모도 쇼츠 영상 보느라 계속 휴대폰을 붙들고 있으니 아이에게 ‘하지 마’라고 할 수도 없죠. 결국 부모부터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와 같이 몸으로 놀아 주는 시간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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