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함양군에는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작은 학교가 10개 있다. 출생아 수 감소와 청년 인구 유출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읍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가 ‘작은 학교’가 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숫자가 작다고 해서 교육의 깊이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규모라는 특성을 살려 아이 한 명 한 명을 중심에 둔 교육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작은 학교다.각 학교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담은 교육활동이 이어지고 있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함양의 작은 학교 이야기를 통해 10개의 작은학교를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첫 번째 이야기로, 유림면에 자리한 유림초등학교를 찾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선생님들의 따뜻한 눈빛, 그리고 작지만 알찬 교육 이야기를 전한다.아침을 달리는 아이들
아침 8시 40분쯤 학교에 도착했다. 건물로 향하려는 순간, 운동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책가방은 잔디 위에 던져두고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바로 ‘아침 달리기 시간’이었다.
아직 준비운동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미 몇몇 아이들은 운동장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체육복 차림의 선생님들도 하나둘 운동장에 모여든다. 유림초 아이들은 매일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빨리 달리는 친구와 느리게 뛰는 친구가 뒤섞여 서로 쫓고 쫓기며 웃음꽃을 피운다. 아이들다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아침부터 이렇게 활기찬 모습이라니, 그 자체로 유림초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했다.아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학교 이야기6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뭐야?”
“방과 후 활동이 정말 재미있어요! 뉴스포츠도 좋고, 사물놀이도 좋아요.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유림초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이다. 밴드, 사물놀이, 미술, 연극, 로봇과학, 영어, 필라테스, 북난타까지. 현대 악기와 전통 악기를 두루 경험하고, 예체능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 학교 자랑 한 가지 해줄래?”
“체험학습이요! 전교생이 같이 제주도도 다녀왔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숙소에서 놀고, 다양한 체험을 한 게 정말 기억에 남아요”
반대로 아쉬운 점을 묻자,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딱히 없는 것 같아요”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참을 생각해도 금세 떠오르는 불편함이 없는 듯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6학년과 5학년 한 명씩 두 명의 아이가 함양읍으로 이사했음에도 여전히 유림초에 다닌다는 사실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오가는 불편함에도 굳이 전학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아이는 짧지만 단단한 한마디로 답했다.
“우리 학교가 좋아요”
그 말 한마디에 유림초등학교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작은학교 살리기를 통한 작지만 큰 변화유림초는 2022년부터 ‘작은 학교 살리기’ 공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여러 갈등과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학생 수도 적당히 늘었고, 예산 덕분에 교육환경도 많이 나아졌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교실과 복도를 리모델링한 게 좋은 경험이 되었죠”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B.T.S.(Band, Theater, Sport)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밴드, 연극, 스포츠를 통해 자기 표현 능력을 기르고, 공동체 속에서 협업을 배우는 내실 있는 교육이다.
또 하나 유림초 만의 특색은 ‘지구 천사(Earth Angel)’ 교육이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자 전교생이 텃밭을 가꾼다.
함양의 ‘토종씨앗 모임’과 연계해 토종씨앗으로 식물을 기르고, 학교에서는 토끼와 닭도 함께 키운다. ‘토닭장’이라 불리는 이 작은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다. 이 계란으로 아이들이 직접 삶은 달걀을 만들어 먹는 일도 있다.
작년에는 이 토닭장을 주제로 아이들이 창작극을 만들어 경남 어린이 연극대회에서 1등을, 전국 대회에서는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단순한 교육을 넘어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된 셈이다.작아서 가능한 것들교장선생님은 소규모 학교이기에 가능한 교육의 깊이를 강조했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요. 인사 교육이나 언어 예절 같은 인성교육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요. 최근 몇 년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마을 환경 정화 봉사, 어버이날 위문공연, 지리산 생태탐사 등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장학금이나 물질적인 혜택으로 학생을 유치하면, 마을에 완전히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는 교육 자체의 내실을 키워, 이 학교의 교육 철학에 공감하는 가족들이 모이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마을이 지켜야 할 학교취재를 간 날, 마침 생태텃밭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완두콩 모종을 심는 모습에서 환한 웃음소리가 운동장을 울렸다.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으로 한 번 폐교의 위기를 넘겼지만, 언젠가 다시 찾아올 위기를 막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그 말이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 학교를 지키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학교가 살아 있어야 마을이 살아나고, 마을이 활기를 찾아야 지역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기자는 유림초등학교에 두 아이를 보낸 학부모로서 11년 동안 이 학교를 지켜봐 왔다. 주변에서는 종종 “작은 학교는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말하지만, 유림초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경험했다.
전교생이 친구가 되어 학년을 뛰어넘어 어울리는 모습, 서로를 돕고 배우는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 글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학교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웃음이 우리 지역의 미래라는 점이다.유림초의 따뜻한 교육이 함양군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 작은 학교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김선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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