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안정적인 영농환경이다. 특히 농업진흥지역은 국가가 우량농지를 보호하고 농업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핵심 구역이다. 농지의 난개발을 막고, 장기적으로 식량자급률을 유지하기 위한 토대라는 점에서 제도적 의미는 크다. 실제로 농업진흥지역은 비농업 목적의 시설 설치나 용도 변경이 철저히 제한되며, 타 용도로의 전용은 매우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보호 장치는 시간이 흐르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구 고령화, 기후위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등 농업의 외부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농촌 현장에서는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 머물러 있어, 농민들은 실제로 필요한 최소한의 편의시설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불편을 감내해 왔다. 다시 말해, ‘보호’라는 명분이 ‘고립’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가장 대표적인 예가 농업진흥지역 내 근로자 숙소나 무더위·한파 쉼터 설치의 불가였다. 농번기에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나 일용 인력을 고용해야 하지만, 숙소가 없어 인력 확보에 큰 애로를 겪어야 했다. 일부 농가는 불가피하게 컨테이너를 설치하거나 창고를 개조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불법 논란과 안전 문제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고온·한파 속에서 일하는 농업인에게 쉴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혹한 속에서 열사병, 저체온증 등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현실은 우리 농촌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실은 “농지를 보호하자”는 제도가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을 낳은 셈이다. 생명과 직결된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제도는 이제 시대의 요구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농림축산식품부는 「농지법 시행령」을 상반기 중 개정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번 「농지법 시행령」 개정은 이러한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한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 근로자 숙소와 무더위·한파 쉼터를 농업진흥지역 내에서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농촌의 실질적 필요에 기반한 변화다. 농수산물 가공·처리시설 부지 내에 최대 20%까지 숙소를 설치할 수 있게 한 점, 주요시설 면적 제한을 완화한 점 역시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긍정적 진전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제도가 개선된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는 시행 이후 행정지원, 재정지원 등 후속조치가 병행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근로자 숙소를 짓는다고 해도 소규모 영농인에게는 건축비와 설비비용이 만만치 않다. 쉼터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을 수만 있다면야 짓고 싶다"고 했던 시설들이다. 규제 완화 이후에는 지자체와 정부가 함께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그간 규제로 인해 수년 동안 농지 내에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마련하지 못했던 현실을 돌아볼 때, 이번 개정은 단지 법령 개정이 아닌 농촌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현장의 목소리에 응답할 차례다. 농업진흥지역 내 숙소 설치나 쉼터 조성이 단지 허용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재정적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농민은 더 이상 ‘규제 대상’이 아니라 ‘지원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제도의 변화가 현장의 체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명하고 속도감 있게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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