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을 견디며 스스로를 달게 만든 곶감처럼, 내 마음에도 오래도록 익어온 발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찬바람에 흔들리며 조금씩 맛이 들어가는 곶감을 바라보며, 기다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왔습니다. 감이 달아지기까지의 그 더디고 조용한 숙성처럼, 이번에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술빵게트’라는 이름의 신박한 실험입니다.아들과 함께 떡카페 ‘함떡’에서 술빵을 찌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술빵은 늘 둥글어야만 할까?” 둥글게만 흘러온 내 인생, 틀에 박힌 재료와 방식들. 이제는 그 틀을 한 번쯤 비틀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바로 바게트 모양의 술빵입니다. 프랑스 바게트처럼 길쭉한 틀에, 우리 술빵의 풍미를 담아 찌고, 다시 살짝 구워내면 어떨까. 한 손에 들고 베어 물었을 때, 촉촉한 빵 속에서 막걸리의 발효향이 은은히 퍼진다면 꽤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나는 그 빵을 ‘술빵게트’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술빵도 아니고 바게트도 아닌, 경계를 들락거리는 새로운 이름, 빵게트입니다. 밀가루, 막걸리 그리고 유정란의 단순한 조합 속에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도를 함께 녹여 넣었습니다. 바게트 틀에 반죽을 부어 폭신하게 찐 뒤, 슬라이스해 버터를 두르고 오븐에 다시 살짝 구워냈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 식감이 입안에서 왈츠를 추었습니다.요즘 나는 술빵게트를 만들며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형태를 바꾸는 일은 결국 정체성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전통을 고수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시대에 맞게 변주하는 일도 우리 손끝에서 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며칠 전, 완성된 술빵게트를 SNS에 올렸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택배로 보내주세요!” “빨리 맛보고 싶어요~” “빵지 순례 떠나야겠네요!” 댓글과 DM이 많이 들어왔지만, 나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발효란 언제나 성급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한 달 정도 시제품을 만들며 반응을 지켜보고, ‘술빵게트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 이벤트도 열 계획입니다. 모양과 맛, 패키지까지 완성도를 높인 뒤에야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술빵게트는 단지 새로운 모양의 빵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지난 시간에 대한 또 하나의 고백이며, 앞으로 어떤 실험을 계속할 것인지 보여주는 한 페이지입니다. 요즘 나는 술빵게트를 만드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건강한 재료에서 발견한 맛입니다. 기다림과 실험의 열기가 스며든 그 빵을 한 조각 베어물며, 아들에게 너스레를 떨어봅니다. “아들~ 이거, 이러다가 함양에 빵지 순례자들 몰려오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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