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는 목련꽃이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순백의 꽃잎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한참을 바라보다 그 결을 따라 눈길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 시선 끝에 머무는 것은 꽃잎 너머 피어오르는 연기입니다. 연초록의 기운이 채 퍼지기도 전에, 짙은 회색의 버섯구름 같은 연기가 엄천강 건너 법화산 너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강 건너 마을 어딘가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119에 신고하니 이미 진화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십여 분 후 헬기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산청의 대형 산불로 함양의 소방 헬기들이 모두 지원 나갔을까? 어쩌면 가용 헬기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 대, 두 대… 이내 세 대, 네 대… 대여섯 대가 줄지어 나타나 부지런히 물을 실어 나릅니다. 헬기의 동선을 보니 서주보에서 물을 떠서 유림 어디쯤의 화재 현장으로 가는 듯 보입니다. 초기 진화가 되어야할텐데 가슴 졸였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인근 산청의 대형 산불로 일손이 안 잡혔는데, 눈앞에서 또 다른 산불을 목도한 순간의 심정은 참 묘했습니다. 산 너머라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은 뜨겁게 조여왔습니다. 다행히 서너 시간 동안 헬기들이 쉼 없이 기동한 덕에 불은 진화되었는데, 만약 바람이 조금만 더 강하게 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이 목 끝까지 차오릅니다. 만개한 목련꽃 송이를  흔드는 봄바람이 반가워야할 이 계절에, 바람이 멈추기를, 숨죽여 기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탓일까요. 우리는 봄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얼었던 땅이 풀리고, 크로커스가 피고,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웃고, 목련꽃이 만발하는 그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올 봄은 봄답지 않습니다. 3월 하순인데도 기온은 이미 여름을 향해 치닫고, 대기는 바싹 말라 있어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삽시간에 불길이 번지고 산을 삼켜버립니다. 계절은 균형을 잃었고, 사람의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농부의 마음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땅이 마르면 씨앗도 숨이 막히고, 숲이 타면 물도 말라버립니다. 물이 마르면 모든 생명은 말을 잃습니다. 불안은 들불처럼 번지고, 심란함은 비가 내린 뒤에야 겨우 가라앉을 듯 보입니다. 나라 안팎도 뒤숭숭합니다. 경제도, 정치도, 외교도, 무엇 하나 뿌리 내린 것이 없어 보입니다. 봄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듯, 사람 사는 세상도 중심을 잃고 흔들립니다. 언제부턴가 뉴스는 뉴스를 넘어서고, 일상은 뉴스보다 놀랍습니다. 마음은 더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땅을. 하늘을. 바람을. 불을. 그리고 사람을. 봄은 흔들리지만, 목련은 피었습니다. 불길은 삼켰지만, 대지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 봄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려움을 품되,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마음. 그 마음 하나로 다음 계절을 준비합니다. 계절이 제 길을 잃은 듯해도, 생명은 결국 그 빛나는 시간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봄은, 그렇게 다시 우리 곁에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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