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의 미래를 알 수 있어. 왜냐하면 내가 계획했으니까’ 손대는 일마다 뭐든 잘 되었던 솔로몬을 생각해 본다. 서열 1위가 아니었던 그는 하늘의 특별한 도움으로 아주 드라마틱하게 왕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솔로몬이 자라서 왕의 자리에 가기까지 그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보고 분석도 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왕의 자리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내 권력을 확장시킬 수 있을까?’
나라를 꾸려나가는 일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세상 속에서 성경적 원리로 살아가기를 고심하는 나에게도 늘 숙고할 일이 많다. 조금이라도 내 뜻대로 잘 풀리는 일이 생기면 즉시 자기만족에 빠져 천리만리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던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는 방식은 주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놀래킴과 순간순간 근심을 불러일으킴으로 늘 상념에 차 있는 시간을 아주 오래도록 보내게 하셨던 것이다. 그 고뇌들은 후에 일을 차분하게 잘한다는 과분한 칭찬까지 듣고 살게 된 원인 중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없이 가벼운 나를 고통 속에 집어넣어 무겁게 성숙시키신 것이다.50이 넘고는 꽃을 가꾸는 일이 잘된다. 안 되는 이유를 수십 년간 열심히도 살폈고, 되도록이면 꼭 필요한 관리 외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열정은 오랜 기다림을 견디게 하고 또한 열매 맺기까지 버틸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움직일 때는 움직여야 한다. 다른 모든 에너지를 줄여서라도 해야 할 일을 제때 해내야 한다. 가지를 잘라주고 흙을 채워주고 비료를 주고 수형을 잡는다. 그렇게 율마 다섯 그루를 삼 년을 키워 한 아름이나 되는 제법 큰 나무로 키워냈고 안개초를 사계절 동안 꽃이 떨어지지 않게 했으며 봄에 강대상에 올릴 꽃들을 제법 쌍쌍이 준비해 놓았다. 일이 되게끔 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잘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두 번째 코로나를 앓았을 때 나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고 다니고 싶도록 몸이 힘들었다. 하늘을 향해 ‘굳이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항변했다.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고 있었던 때였다. 계획에 전혀 없던 사건이 일어났다. 그 고통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끝 순이 마르도록 가물면 나무의 생명도 끝난다’는 것이었다. 피가 말랐다. 하늘이 문을 닫겠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추워도 더워도 끝 순은 끝까지 버틴다. 다른 큰 잎들과 열매까지 다 왔다가 가도 끝 순은 꽃에게 잠시 자리를 내어 줄 뿐 제일 여리지만, 또한 제일 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 끝순이 마른다는 것은 나무의 생명이 끝난다는 말이다. 그 일은 결국 모든 생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든 그 어떤 생물이든 하늘을 향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 부부는 그 두 번째 코로나 기간에 큰아주버님 가시는 길을 지켜보지도 못했고, 장례식엔 아예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꼼짝 마!’ 였다. 그리고 생활비도 모자라서 아끼려고 냉장고 파먹기를 해야 했다. 하다 하다 먹을 것도 말라가고 있었는데, 교회 집사님이 먹을 것을 가득 가져오시는 바람에 그 인생의 토네이도를 넘어갈 수 있었다. 코로나도 결국 우리를 다시 풀어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다행히 긴 시간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끝 순이 바짝 마르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단비를 주신 것이었다. ‘겸손하게 살아라!’ 하시면서……. 예방주사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항상 감사하며 살아라 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다른 어떤 것에도 빼앗기는 것을 싫어하신다. 질투가 좀 많으신 분이시라……. 이제부터는 내 계획은 접어 두고 하나님의 계획을 물어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나는 남편 목회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보호 시설에서 일하게 되었다. 고되지만 요양보호사로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살만하고 행복하다. 내가 웃고 즐거운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웃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나의 스무 가지가 넘는 직장 경험 중에서 적성에 가장 잘 맞는다고 여겨도 무방할 것 같다. 나의 작은 섬김에 울기도 하고 웃어도 주시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사는 이 생활이 너무 보람차고 좋다. 나는 어르신들과 같이 앉아 트로트 부르는 사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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