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방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단어인 세대간 불균형, 청년세대 유출, 출산율 감소, 전입인구 감소 등 함양군은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청년세대가 중요하다. 청년세대는 지역의 활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지역에서 재밌게 지내는 것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청년세대 유입을 증가시킨다. 출산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들은 함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함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함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함양 청년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엄마가 부르면 가는 거지요”
“전기 쪽으로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어머니가 아프시다니까 그건 끝이더라고요. 전기보다 엄마죠”함양청년회의소 김종경 회장은 1989년 태어나서 초중고 모두를 함양에서 보냈고, 스무 살 무렵 마산대 전기과에 진학하면서 잠시 타지 생활을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며 전공을 살려볼까 고민하던 시기,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가 딱 24살이었어요. 마음은 전기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는데, 어머님이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전화로 내려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고민할 틈도 없었어요” 그 선택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15년 넘게 운영해오던 청과물 가게 ‘남양청과’를 이어받는 삶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지역에 뿌리 내리는 두 번째 성장기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장사는 익숙했어요. 수박 하우스 따라다니고, 설이면 귤 컨테이너 나르고, 그런 게 제 일상이었죠. 그래서 어머니 일이 낯설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나한테 잘 맞는다고 느끼게 됐어요.” “저는 함양에 돌아올 마음이 늘 있었어요. 친구들도 있고, 가족도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는 곳이니까요” 남양청과와 10년
남양청과는 김 회장의 일상이자 터전이다. 스물넷에 내려와 하나하나 배우며 가게를 지켜온 지 어느덧 10년째. 그리고 지금, 어머니의 건강이 더 나빠지면서 그는 사실상 전면에 나서게 됐다. “진주 초전동 도매시장에 매일 가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8시에 경매 시작 전까지 비파괴 당도 측정기도 들고 가서 복숭아 하나하나 찍어봐요. 복숭아는 특히 맛없으면 손님이 바로 알아요. 손님들에게 좋은 과일을 제공할 수 있어야 신뢰를 쌓을 수 있어요” 그는 과일을 고르는 데 있어 ‘맛’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직접 먹어보고, 당도를 재보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지니 늘 눈과 입을 동시에 써야 한다. 손으로 고르고 정성으로 담는 방식이다. “마트는 예쁘게 포장해서 진열해두죠. 근데 맛은 몰라요. 저는 다 먹어보고 들여오니까 손님들이 믿고 찾아줘요” 남양청과에는 단골이 많다. 어머니가 일궈놓은 신뢰가 있었고, 김 회장은 그 신뢰를 이어가는 사람이다. 손님에게 더 살갑게 인사하고, 필요한 과일을 알아서 챙겨두기도 한다. “외국 손님들도 요즘 많아요. 열대과일 가져다 놓으면 고향 생각난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함양에 이런 것도 있냐’며 놀라는 표정 보면 괜히 뿌듯해요” 장사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김 회장은 ‘친절과 성실’이라는 오래된 정답을 고집하며 지켜간다. “짜장면집 아들은 짜장면 안 먹는다잖아요. 저도 그래요. 과일 좋아했는데 요즘은 잘 안 먹어요. 다만 제가 먹어서 맛있을 때보다 손님들이 ‘진짜 맛있다’고 할 때, 그게 제일 기분 좋죠”
함양청년회의소 활동과 로컬 네트워크의 힘
김 회장은 함양청년회의소의 현 회장이자, 경남 울산 지구 35개 로컬 중 한 명의 리더다. 입회는 2022년 9월, 불과 3년 전. 그가 함양청년회의소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손님이셨던 분이 함양청년회의소 활동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셨어요.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해보겠다고 했죠. 그때가 34살이었어요” 입회 3개월 만에 회원관리 분과위원장이 됐고, 그 다음 해엔 사무국장, 그리고 올해는 회장이 됐다. 초고속 승진인 셈이다. “회장 하고 나서 진짜 많은 사람을 알게 됐어요. 한국청년회의소 경남울산지구에 로컬 회장이 35명인데, 다 저랑 동기예요. 요즘은 동네 친구만큼 더 끈끈한 사이예요” 얼마 전 산청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그 네트워크는 빛을 발했다. “불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 듣자마자 단톡방이 난리였어요. ‘괜찮냐’, ‘뭐가 필요하냐’ 묻고 화요일에 함양에서도 산청에 구호물품 준비해서 전달했죠. 초코파이, 물, 간편식 같은 거요. 직접 뛰어다니니까 마음이 더 애틋하더라고요” 함양청년회의소가 갈 길은 참 멀다. 지역에 청년인구가 감소하면서 회원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기본적인 역할을 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내부 회원 확충, 저출산 대응, 지역 행사 기획 등 청년의 힘으로 지역에 기여하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함양청년회의소는 50주년을 맞이했다. “올해가 함양청년회의소 50주년이에요. 의미 있는 해죠.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회장직에 오를 때 50주년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부담도 느껴지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잘 해내고 싶어요. 회원도 더 늘리고, 지역 사회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단체가 되고 싶어요” 가정을 지키는 마음도 지역을 위한 마음도
“와이프랑은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2015년에 만나서 3년 연애하고, 2018년에 결혼했죠. 지금은 딸이 둘 있어요. 4살과 7살” 김 회장은 가족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함양청년회의소 회장이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이다. “함양청년회의소에서는 회장의 아내를 ‘부인회장’이라고 불러요. 정말 많이 도와줘요. 저녁 행사도 많고, 아이들도 봐야 하고. 혼자였으면 못했을 거예요” 딸바보인 그는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딸만 둘이라 아들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딸이 참 좋아요” 2025년은 여러모로 김 회장에게는 시험이 겹쳐 있는 해가 됐다. 어머니의 병세가 안 좋아지며 가게 운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고, 함양청년회의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그리고 50주년 행사까지 깔끔하게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웃으며 말한다. “힘든 해예요. 근데도 괜찮아요. 왜냐면, 제가 뭔가 해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거잖아요. 가족을 지키고, 지역을 위해 움직일 수 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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