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차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길게 이어진 의료용 카메라가 식도로 넘어가는 것은 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다. 억지 구역질은 참을 만도 하지만 수면내시경이 편하다. 하나, 둘, 셋까지 세기 전에 눈이 감긴다. 검사는 언제 마쳤는지 서늘한 검진실 안쪽에 담요가 덮인 채 의식이 깨어난다. 간호사님의 먼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다가 점점 커진다. 정신을 차리면 나도 모르게 혼자 말이 나온다. “좀 더 자게 그냥 두지.” 건강 검진을 와서 잠을 자려고 하다니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잠은 더 자고 싶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 중에서 “잠” 하면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사당오락(4시간 자면 합격이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말씀이다. 종달새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대우를 받는다. 올빼미형은 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유형으로 꾸중을 듣곤 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 자료에 의하면 잠의 유형은 아침 종달이형, 중간형, 밤 올빼미형으로 타고난다고 밝혀지고 있다. 스스로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각성 시간대에 따라 유전적 요인이 크다는 것이다. 하루 8시간을 잔다면 약 30년 동안을 자는 것이다. 짧은 인생에 잠자는 시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비효율적인 시간이라고 줄이고 있다. 특히 요즘은 핸드폰을 보면서 잠자는 시간은 더 짧아지고 있다. 잠은 단순히 눈을 감고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라고 정의되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 중이다.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국립수면재단은 성인 기준 하루 8시간의 수면을 권고하지만 대중들은 수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다. 보건 관련 홍보자료 또한 미흡하다. 건강의 3대 요소인 수면, 음식, 운동 중에서 유독 수면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소홀한 편이다. 불면증 치료나 카페인 섭취 조절 정도가 일반적인 접근방식일 뿐,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이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건강 관리를 위해 이제 뒤돌아보고 점검을 해 볼 시간이다. 수면은 렘(REM) 수면과 비렘 수면(NREM) 두 종류로 나뉜다. 렘수면은 자면서 눈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인다 하여 Rapid eye-movement 영어식 약자이다. 렘수면은 얕은 잠으로 꿈을 꾸는 수면이다. 비렘수면은 깊은 잠으로 뇌와 신체가 휴식을 취하며 회복하는 시간이다. 특히 비렘수면 중에는 뇌척수액이 뇌 속 신경물질인 노폐물을 제거하며, 기억과 관련된 시스템이 작동된다. 이 과정은 알츠하이머나 치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두 종류의 수면은 90분 주기로 비율을 달리하여 아침까지 반복되며, 이는 건강한 수면 패턴의 핵심이다. 40대부터 수면의 양과 질, 규칙적인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대한수면학회는 연령별 권장 수면 시간을 제시하며 학령기 아동(9~13시간), 청소년(8~10시간), 성인(7~9시간)의 적정 수면 시간을 강조한다. 수면의 주요 기능으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 회복과 면역 기능 강화, 기억력 강화와 학습 능력 향상,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해소, 성장 호르몬 분비와 세포 재생, 심혈관계 건강 유지 등을 꼽는다. 반대로 수면이 부족할 경우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소, 감정 조절 곤란, 면역력 저하, 체중 증가, 의사결정 능력 저하, 심혈관 질환, 당뇨병, 우울증 위험 증가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술과 물질문명은 우리의 잠을 점점 빼앗아 가고, 우리의 건강은 더 위협을 받고 있다. 인생의 1/3을 바쳐야 할 만큼 중요한 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가? 잠을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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