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은 모호하고, 어떤 문장은 분명하며, 어떤 문장은 포괄적이고, 어떤 문장은 두루뭉술하다. 어떤 문장은 냉철하고, 어떤 문장은 기만적이며, 어떤 문장은 온유하고, 어떤 문장은 야만적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얼굴이 달라진다는 것을 소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보며 느낀다.정연함을 배척한 거친 말들이 길을 잃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광포해지는 바람에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자주 흐려지고, 이런 말 저런 말들이 뒤섞여 수용자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회학적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안개에 대한 여러 은유의 문장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말들이 뒤섞이면 가닥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별을 잃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반된 견해가 충돌하고 말들이 불화하는 현상을 목도하며, 어떤 말이 문명한 곳에 있으며, 어떤 말이 반문명의 영역에 있는 것인지, 선을 넘는 무도한 말을 대처할 방안은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고, 근본 없는 혼탁한 언어가 사회의 규범을 어지럽히며 곳곳으로 흩날리는 것을 보며 언어 사용 능력의 본질에 대해 새삼 각고하게 된다.언어는 잘못이 없다. 이를 사용하는 자의 면면이 왜곡되거나 뒤틀려있지 않다면 언어 자체는 결함이 없다. 언어의 선택과 배치와 배열에 불의한 뜻을 내포하고 불온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게 되면, 난잡하고 불순한 언어 사용자들이 되는 것이다.이훤은(아무튼 당근마켓) “말과 태도는 그 사람의 지문 같아서 감춰지지 않는다”고 했다. 말의 사용은 곧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자는 천박한 사람이 되고, 과격한 언어 사용자는 과격한 사람이 되며, 거짓된 말을 사용하는 자는 거짓된 자가 된다. 교묘한 술책을 부리는 사람들 중에는 그럴듯한 궤변을 사용하여 듣는 자를 현혹하기도 한다. 공허한 빈말도 있고, 맥락의 흐름을 이탈한 이도저도 아닌 말들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뒤집는 무책임한 말도 있다. 누군가가 세상을 어지럽힌 이런 말들을 수집하여 분류할지도 모른다.언어 사용 능력이 하락함에 따라 인격이 추락하는 글로벌한 양상도 등장하고 본질에 대한 심사숙고의 시간도 길어진다. 세계 곳곳의 광분과 광기의 본질, 돈과 권력의 본질, 그리고 불의와 부당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바라는 바가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그 욕망들이 그들 자신을 얼마나 해칠지를 가늠해 보노라면 양식良識을 저버린 인간의 어리석음과 마주치게 된다.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존 롤스의 <정의론>, 자크 데리다의 <법의 힘>,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노암 촘스키의 <불량국가>... 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책들이 무슨 소용에 닿겠는가. 읽은 자는 허망할 것이고, 읽지 않은 자는 위험한 신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독서 교육의 명분은 명분으로만 남아서 교육의 무용함을 증명한다.이러저러했던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고, 곳곳에서 충돌하고 부서지는 말들이 문명한 자리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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