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을 받았는데요… 때깔이…” 갑자기 걸려온 고객 전화 첫 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녁을 먹던 중이었는데 단골 고객의 이름이 떠서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곶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전화를 받아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답변을 드리곤 했습니다. “곶감은 원래 그런 색깔이 정품입니다. 자연이 말리는 것이기 때문에 공장에서 쿠키 찍어내듯 똑같이 예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번 전화는 달랐습니다. 으레 때깔이 안 좋다는 항의성 전화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때깔이 너무 좋아서 의심스럽다는 것이었습니 다. “사장님, 저는 단골입니다. 그동안 받은 곶감은 늘 때깔이 어두워도 옛날식으로 정성껏 말린 거라 믿고 안심하며 맛있게 먹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받은 곶감은 몇 개만 어둡고 나머지는 때깔이 너무 곱습니다. 혹시 인위적으로 때깔을 좋게 만든 건 아닌지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미소가 슬며시 나왔습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지난겨울 작업장에서 일을 도와준 절터댁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관행으로 만든 곶감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때깔이 좋아졌어요.” 내 말에 절터댁도 “하모, 때깔이 좋으면 한 맛 더 나제~”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농부의 작은 성취감이란 이런 순간에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말로 그 말처럼 때깔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항의(?)를 받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화 를 끊고 나서 나는 잠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처음 옛날식 곶감을 만들던 해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옛날 방식으로 무모하게 만든 곶감이 모두 흑곶감이 되어, 팔 엄두를 내지 못하고 냉동창고에 넣어두고는 망했다고 크게 낙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실패한 곶감은 내 자존심처럼 창고 안에서 시커멓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몇 달 뒤 무심코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 습니다. 시커먼 곶감 위에 눈처럼 하얀 분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습니 다. 놀랍게도 곶감은 그 하얀 분 덕분에 품위 있어 보였고, 한입 베어 먹어보니 속은 빠알갛고 맛 또한 훨씬 달콤하고 깊어졌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시간이 완성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그 곶감이 바로 분 난 ‘귀감’이라는 이름으로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시작이었습니다. 여섯 번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는 옛날식 곶감을 만들며 덕장 시설도 현대화되었고 기술도 매년 성숙해졌습니다. 이제는 하얀 분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곶감 본연의 맑고 고운 빛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곶감을 보며 가끔은 스스로도 놀랐지만, 고객도 나와 같은 놀라움을 느낄 줄은 몰랐습니다. 고객의 오해 섞인 전화가 내게는 그 어떤 말보다 값진 격려였습니다. 이제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곶감 하나만큼은 내가 잘 만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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