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000m 이상의 함양 15개 명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러의 함양 산행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주간함양 김경민 기자가 직접 함양의 명산을 오르고 느끼면서 초보 등산러의 시각으로 산행을 기록한다. 해당 연재로 천혜의 자연 함양 명산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19일, 대봉산을 찾았다. 이 산행은 원래 감투산을 목표로 계획되었으나, 등산로 착오로 인해 뜻하지 않게 대봉산 계관봉 정상에 오르게 됐다. 예상치 못한 일정 변화였지만, 이러한 우연이 산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다.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간 하루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풍경은 그 어떤 계획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대봉산(1,253m)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백운산의 동쪽 산줄기에 위치하며, 과거에는 ‘괘관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함양에서 큰 인물이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벼슬을 걸어놓는다’는 뜻으로 개명되었으나, 해방 이후 원래 명칭인 계관봉을 되찾았고, 이후 ‘큰 인물이 난다’는 의미를 담아 대봉산으로 바뀌었다. 이름에 담긴 역사가 흥미롭다. 현재 대봉산은 모노레일과 집라인 등 다양한 산악 레포츠 시설이 조성된 ‘대봉산휴양밸리’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정상에서는 덕유산과 지리산 등 백두대간의 연봉이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함양 대봉캠핑랜드에서 시작됐다. 원래 계획은 감투산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었으나, 등산로 안내 팻말이 명확하지 않아 경로를 착각했다. 오르고함양 앱을 통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반대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결국 급히 목표를 변경해 대봉산 계관봉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봉캠핑랜드에서 대봉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3.9km, 대략 2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로 변경과 헤맴으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산에서 보내야 했다.
오전 9시 30분경 출발했지만 경로 수정으로 인해 초반부터 시간이 지체됐다. 처음 30분 정도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 길은 비교적 완만했으나, 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산을 오르는 느낌이 덜했다. 일반적으로 감투산을 시작으로 대봉산 계관봉·천왕봉까지 종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여건상 대봉캠핑랜드에서 계관봉으로 바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초반 일정이 어긋나서인지 산행 내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지도와 표지판을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화로 정신이 다소 산만했지만, 눈 덮인 겨울 산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전날 내린 눈이 제법 쌓여 있었으나,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설경 속에서 산길을 따라 걸으며, 조용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겨울 산은 초록의 숲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다. 온 세상이 순백의 색으로 덮인 듯한 고요함 속에서, 발자국 소리만이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 준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계관봉과 천왕봉으로 갈리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천왕봉은 대봉산휴양밸리의 모노레일을 이용해 오를 수도 있고, 감투산을 거쳐 계관봉을 찍고 이동하는 등산객들도 많다. 우리는 계관봉 방향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지점부터 본격적으로 등산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오르고함양’ 인증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등산을 하며 인증을 받는 재미도 쏠쏠해 보였고,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산행을 즐기는 이들을 보며 산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점심을 챙겨오지 않아 허기가 느껴졌지만, 목표한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급격한 오르막이 이어졌고, 바닥이 얼어 있어 결국 아이젠을 착용했다.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으며 올라갔다. 어느 순간, 길가에 ‘수령 1000년 철쭉나무’라는 비석이 보였다. 봄이 되면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지금은 눈에 덮여 조용히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이곳의 철쭉이 만개한 풍경을 상상해 보니, 봄날 다시 한번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계관봉 정상에 올랐다. 비록 예상과 다른 여정이었지만, 오후 1시를 넘겨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은 남달랐다. 정상에서 바라본 설경은 남덕유산에서 보았던 풍경만큼이나 장관이었다. 하얀 눈이 덮인 능선이 끝없이 이어졌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산의 고요함을 더욱 강조하는 듯했다. 대봉산의 실제 정상인 계관봉은 멀리서 보면 날카로운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마치 닭의 벼슬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런 특징 덕분에 ‘계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애초에 감투산을 목표로 했던 만큼 가벼운 산행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힘든 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했다. 산행 전 코스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계획이 어그러지더라도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등산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봉산 산행도 그런 의미에서 오래 기억될 특별한 여정이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