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의 현장을 국제 뉴스거리로 바꾸어놓은 뱅크시는 강하고 선명한 슬로건을 제시한 작품으로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그의 작품은 어디에나 있고, ‘어느 정도쯤의 농담’을 개입시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저항을 베이스로 깔고 때로는 조롱을 내재하고 선동과 적대의 메시지를 제시하면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권력에 대한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교묘하게 공권력을 피해 규칙을 어기면서 대중의 시선을 붙들었다.위선적이고 상투적이며 허위와 기만의 현실에 식상하던 무렵 BUONbooks에서 출간한(24.5.10. 초판발행) <BANKSY>를 만났다. 사진보다 텍스트를 우위에 두는 편이므로 크고 두꺼운 이 책을 펼치면서 촘촘한 문장에 먼저 눈을 두었다. 기사로 조각조각 접했던 뱅크시는 그를 설명하는데 불충분했 다. 그러나 본북스의 <뱅크시>는 전면적으로 뱅크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앎의 세계관을 확장 시켰고 작품사진과 텍스트가 어우러져 선명했다.불의한 것들에 저항하기 위하여, 그 불의가 불의함을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종횡무진 그래피티를 난사할 때 사람들은 경악했고 경탄했고 동조했다. 2003년 팔레스타인 라말라의 한 벽에 그린 <꽃을 던지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세운 장벽이 가까이에 있는 예루살렘을 향한다. 복면을 한 남자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던지는 꽃은 평화를 상징하는 메시지가 되어 울림이 컸다. 농담같은 꽃의 이미지는 강한 은유로 작동하며 설득을 요했다.2021년 우크라이나의 파괴된 건물 벽에 그린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아이가 유도복을 입은 어른을 유도 동작으로 제압함으로써 작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거인을 무너뜨리는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그의 작품은 시선을 붙들고 사진으로 찍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 되었고, 세상의 모든 불의에 대해, 그 불의 를 자행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가 확산되었다. 지금도 주목받는 세상의 일들은 SNS를 통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실시간 세계로 널리 퍼진다.불의를 행하는 자의 심리적 기반은 무엇일까. 뱅크시는 예술계가 하나의 거대한 우스갯거리며 지나친 특권을 누리는 자들, 가식적인 자들, 나약한 자들의 안식처라고 하면서 현대미술은 수치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 을 사용하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그렇게 적은 이야기를 한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계 계급의 규칙을 무너뜨리고 재구성을 한다는 평을 받는다. 지나친 특권을 누리거나 누리지 않는 부류일지라도 상투적이고 위선적이며 구태의연하고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시전하는 사람들은 되짚어봐야 할 문장이다.뱅크시의 “예술이란 어느 정도쯤의 농담이죠.”가 메시지를 뒤엎는 것인지,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농담이 뒤섞인 그래피티는 부조리한 문장, 어떤 방편으로 의식의 사이를 비집는다. 그는 데미안 허스트와 엔디 워홀의 가까이에 있지만 나는 뱅크시를 고흐와 에드워드 호퍼의 곁에 나란히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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