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장에서 곶감을 내리며 당도를 측정해 보니 47브릭스가 나옵니다. 그 숫자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안도합니다. 이제 하우스에서 며칠만 더 후숙시키면 55브릭스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앞의 숫자가 새삼 마음을 울립니다. 완벽에 가까운 55브릭스에는 닿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한 곶감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합니다. 후숙의 시간을 거쳐 55브릭스까지 이르는 곶감은 단순한 당도의 수치가 아니라 한 해 동안 태양 아래에서, 바람 속에서,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 담아온 농부 삶의 농도를 상징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문득 지금 나의 삶을 당도계로 측정하면 몇 브릭스가 나올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봅니다. 삶은 어쩌면 당도와도 같습니다. 단맛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태양을 견디고 바람에 깎이고 나서야 비로소 깊고 은은한 맛을 내는 법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생의 결을 느끼고, 단단해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곶감이 후숙 과정을 통해 단맛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끝없는 숙성을 통해 농도를 더해갑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단단해지고, 오늘보다 내일 더 깊어집니다. 당도가 최고치에 다다랐을 때, 그제야 삶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계절을 거치며 한 번 더 피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삶의 깊이는 순간의 절정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정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무르익는 것입니다.
하우스 곁의 썬룸에 붉은 장미가 한 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삽목했던 한 뼘도 안 되는 어린 묘목이 죽기 살기로 꽃을 피우네요. 겨울 장미가 따뜻한 공간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색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시선은 찬 바람 부는 앞마당의 국화로 향합니다. 국화는 포기를 모릅니다. 여름의 뙤약볕 아래 농부의 무관심에 물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말라버린 채로 밑둥까지 잘려나갔던 것이, 지금 이 겨울에 다시 싹을 틔우고 기어이 꽃을 피워냈습니다. 찬바람 속에서, 얼어붙은 땅 위에서, 마치 살아 있음 자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모습은 경이롭다 못해 숙연합니다.
정원에 피는 꽃은 자아의 은유, 영하 8도의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국화를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너는 정말 죽기 살기로 피는구나?"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국화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한없이 가녀린 듯 하면서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맛이 들어가는 곶감에 피는 하얀 꽃과 겨울의 한복판에서 피어난 국화. 둘 다 농부의 삶을 드러내는 은유처럼 다가옵니다. 벌써 12월 말, 내년은 설이 빠르기에 대목을 봐야 하는 곶감 농부가 앞마당의 국화와 썬룸에 핀 한 송이 장미를 바라봅니다. 이런 소박한 사치와 더불어 삶은 온전히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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