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가수 최백호가 부른 가요 중 한 소절입니다. 저는 무슨 악기이든지 한 가지 정도는 멋들어지게 잘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유년기 음악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했기에 그 열망은 더욱 컸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하모니카를 장만했습니다. 동요부터 시작해서 대중가요도 악보 없이 불면서 기분을 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여러 날을 가지고 놀다 보니, 어느 순간 노래만 알면 멜로디에 따라 바람을 넣었다 뺐다, 입술이 상하좌우로 이동해서 곡을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겨울에 기타를 샀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 시절은 청바지에 통기타가 유행했던 터라 부모님께 거금을 받아 세고비아 통기타를 사서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코드 스케일 연습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독학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고, 곧 장롱 속 악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모니카는 소리가 가볍고, 기타는 손가락이 아프다는 것이 또 하나의 핑계 아닌 핑계이고 한계였습니다.
2017년 통영 욕지도 욕지중학교장으로 발령받고 관사 생활을 하면서 밤에도 시간이 많았습니다. 우연히 유튜버를 통해 듣게 된 ‘섬마을 선생님, 홍도야 울지마라’ 색소폰 연주가 그렇게 멋졌고 듣기 좋았습니다. 50대 남자의 로망이 꿈틀거렸습니다. 귀로만 들리는 소리를 지나서 가슴을 두드리는 심장 박동 소리처럼 울림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지인을 통해 중고 알토색소폰을 장만했습니다. 유튜버 강의를 들으며 도레미파솔라시도 스케일부터 기초 음계 연습을 줄기차게 했습니다. 2019년 9월 고성회화중학교로 일터를 옮기면서 집 가까이 있는 한울 색소폰 음악학원에 등록했습니다. 한 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하루도 빠짐없이 방음시설이 된 음악실을 찾아서 반복연습을 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랬으면 싫증이 났겠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나발을 불었습니다. 그러나 기본이 어느 정도 잡혀갈 무렵 코르나-19 펜데믹이 와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학원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차선책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독학으로 연습했습니다만, 중수·고수의 반열로 올라서기에는 한계가 왔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풀린 지금은 진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색소폰반에 등록하여 10여 명의 동호인들과 음악을 교류하고 합주 연주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길은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 생활을 하는 것이요, 세상에서 제일 잘못 사는 길은 해독을 발견하여 원망 생활을 하는 것이니라’ 언젠가 눈여겨보았던 음악학원 건물벽에 붙어 있는 원불교 교리 중 한 구절입니다. 뒤늦게나마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색소폰 소리를 발견하여 감사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저의 마음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악기를 펼쳐서 음악연주를 시작하면 서너 시간은 금방 지나가니 지루한 줄 모릅니다. 악보 읽기와 리듬 멜로디 운지 연습으로 치매도 예방하고, 폐활량이 늘어나서 숨쉬기도 편하고, 일어서서 연주하다 보니 다리에 힘이 생겨 평소 발걸음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음악은 나눔이며 배려라고 합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선한 사람은 깨끗하고 고운 소리가 나며, 남을 해롭게 하는 못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둡고 거친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연주자의 마음속에 있는 전부가 음악연주에 그대로 묻어나온다고 합니다. 남녀노소가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과 협동성 감각을 갖고자 한다면 색소폰 합주가 제격이라 합니다. 이리하여 욕심내지 않고 같이 가는 길이 편안해지며, 때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하고 현란한 애드립 기술보다 절제하고 깊이 있게 연주하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耳順),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從心)’ 오래전 공자의 말입니다. 인생 말년을 짙은 색소폰 소리와 함께 공자님 말씀처럼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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