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부산행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한때는 익숙했던 이 길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내가 떠나온 뒤로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영원히 그대로일 것 같던 공간은 개발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빌딩과 아파트들이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 어딘가에 여전히 내가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이 있을 것 같아, 그 기억을 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버스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방과 후 책가방을 메고 친구 집에 들러 함께 문제를 풀고, 좁은 골목길에서 뛰놀던 모습들. 그때의 골목은 우리에게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삶의 첫 경험을 배우고, 세상에 대한 작은 호기심들을 채워나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내일이란 늘 보장된 미래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따스하고 안온한 휴식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떠나는 이 길은 과거를 향한 길이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를 추모하는 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은 단순히 조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유년의 일부를 마주하는 여정이며, 사라져버린 고향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문득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에 들러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허물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흔적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낯선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빌라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나의 세계였던 아담한 집과 마당은 없어졌고, 자동차 주차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과거가 완전히 지워진 듯한 그곳에서,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주변 골목을 걸으며 한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려 했지만, 골목길조차도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 길이 상당히 넓고 커 보였건만, 오늘 내가 마주한 골목은 생각보다 좁고 작아 보였습니다. 다니던 길들은 모두 축소되었고, 한걸음에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였습니다. 반면, 건물들은 열 배, 스무 배로 높아져 있었습니다. 익숙한 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것 같은 이질감에 나는 한동안 말없이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골목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만이 아니라, 변화를 마주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이 변화하였을 때,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비록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고 해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은 여전히 나만의 보물 같은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고향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시간과 추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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