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V 귀농 다큐를 3박4일 촬영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EBS 극한직업 촬영하고 곶감 판매에 재미를 본 터라 섭외가 들어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했습니다. 속으로 (올해는 뭐 없나?)하던 차였거든요.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이번 촬영은 대타였습니다. 예약한 사람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대타를 급히 찾았답니다. 아다리가 맞아 며칠 후 바로 촬영까지 성사되었는데 일이 너무 쉽게 풀려 방송 작가가 살짝 놀랐다고 합니다. 방송국의 목적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지만 출연자의 입장에서는 라이브 광고를 공짜로 하는 셈이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지난 3박 4일간의 다큐 촬영은 어쩌면 귀농 인생의 ‘하이라이트 편집본’ 같은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카메라가 일상을 따라다니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재미도 있더군요. 마지막 날 감독 보조가 “출연료로 40만 원이 나오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돈이 나오는 줄 알았다면, 첫날부터 좀 더 열심히 웃고 연기도 좀 더 잘 했을 텐데 하고 너스레를 떨자 감독님도 “섭외 단계에서 미리 말씀드릴 걸 그랬습니다~”라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출연료는 작은 위로였습니다. 첫 촬영은 드론으로 마을 전경을 스케치하며 시작했습니다. 푸근한 이웃 할머니들과 감을 깎는 모습도 담았지요. 올해 곶감 농사는 어떠냐는 질문에, 할머니들은 각자 자신만의 전문적인 의견을 펼치셨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번 촬영이 두 번째였던 덕분에 할머니들의 연기가 더 좋아졌다는 겁니다. 지난해 EBS <극한직업> 촬영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작업복도 한층 멋스럽게 차려입고 오셨더군요. 역시 경험은 어디서든 빛을 발합니다. 둘째 날은 아내가 등장했습니다. 학교에 나가는 아내가 수능일이라 쉬는 덕분에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는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지난해 여름 폭염과 잡초의 맹공에 텃밭은 사실상 ‘농사 패배 선언’을 한 상태였습니다. 호박고구마를 한 단 심었는데, 소출이라고는 아기 주먹만 한 고구마 세 개가 전부였습니다. 이쯤 되니 농담이라도 해야겠더군요. “이건 신품종 방울 고구마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자 촬영 팀 모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세 번째 날은 곶감 깎기를 할머니들에게 맡기고 아들과 함께 함떡 카페로 이동해서 인절미와 찰떡을 만들고 신제품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떡을 만들다 보니, 이 떡들이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또 다른 도전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한 덩이, 한 덩이 찰떡처럼요. 마지막 날은 토요일이라 아내와 함께 귀농 22년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긴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도시에서의 삶, 귀농 후의 고단함, 그리고 지금의 안정된 일상까지. 농촌에서의 삶은 비록 방울 고구마 같은 실수도 있지만, 곶감처럼 천천히 익어가는 깊은 만족감을 준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단순히 방송용 기록을 넘어, 농부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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