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고 들으면 눈물 나고 가슴 뛰는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기분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젊고 싱싱하고 잘나가는 사람, 특히 내가 관심이 있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들었을 때는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반면에 병들고 나이 많은 그것도 인생의 마지막 황혼길에 접어든 늙다리 노인에게 느닷없이 들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묘하지 않을까?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집에 이르러 그의 현관문을 열었다. 안방 문은 조개가 입을 다문 듯 굳게 닫혀 있고 소파도 냉장고도 가스레인지도 덩달아 조용하다. 오직 그가 피우며 내뿜은 희뿌연 담배 연기만이 스멀스멀 거실 안을 기어다니다 날아다니며 움직일 뿐이다. 콜록콜록 애써 기침을 참으며 가방을 내려놓은 그녀는 고무장갑을 끼고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그릇을 싱크대에 옮기며 수도꼭지를 튼다. 달그락달그락 쓱싹쓱싹 톡톡톡 설거지를 하고 국을 끓인다. 어느덧 방문이 열리고 안방의 그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소리, 창가의 의자에 앉는 소리가 난다. “일어나셨어요?” 그를 돌아보며 인사를 하고 그녀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잠시 후 문득 이상하다. 등 뒤에 무엇인가 있다는 느낌이다. 고개 돌려 돌아보는 순간 훅하니 할아버지가 서 있다. 깜짝 놀란 그녀가 몸을 옆으로 움직인다. “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가만가만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사랑을 할 때의 눈빛 바로 그 눈빛으로 말이다. ‘이거 미친 할아버지 아냐?’ 뇌에 지진이 난 그녀는 잠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몇 초가 흐르고 정신을 겨우 차린 그녀는 “엊그제도 왔었는데요!” 라며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는다. “그래도 그 리 웠 어 요” “아, 네에...” 대충 얼버무리며 식탁 위에 아침을 차린다.   소파에 앉은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찬다. 혼자 사는 노인이니 물론 외롭고 고독할 수 있지. 젊은 여자가 매일 방문하여 몇 시간씩 함께 하며 음식을 만들어주고 말을 붙여주고 하니 딴엔 좋아질 수가 있겠지. 그런데 자그마치 여든셋의 노인이잖아! 왜 하필 나에게?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노인이라도 성생활의 기대수명은 70이고 성적인 감정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80이든 90이든 있을 수가 있지. 그리고 노인 문제 중에는 빈곤, 병고, 고독고, 무위고로 나누는 4고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심한 것이 다름 아닌 고독고라고 하지 않는가. 테레사 수녀도 말했어. “노년의 고독이 빈곤보다 더 큰 재난이다.” 라고.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면 나에게 보고 싶었다고 그리웠다고 말하는 것일까? 인간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할아버지와 마주 앉은 그녀는 솔직하게 불쾌감을 말하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서로의 역할에 대해 확실하고 선명하게 말씀을 드린 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ㅎㅎ 83세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청년으로 변하다니 사랑은 정말 대단해!’   어깨에 가방을 메고 나오는 그녀의 입에서는 ‘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라는 문장이 휘파람 노래가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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