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발톱은 팔월에는 씨를 뿌려 싹을 틔워야 내년 봄에 꽃을 볼 수가 있다. 여느 꽃들처럼 봄에 씨를 뿌렸다간 봄꽃이라 발육이 충분치 못해 그해에 꽃을 볼 수가 없다. 씨가 발아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체가 되는데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꽃이다. 하지만 씨가 무르익는 시기는 빨라서 팔월 전에는 씨앗을 거두어 뿌릴 수 있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꽃을 피울 힘 있는 성체가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잘하고도 후회하는 내 옛날 실패 싸이클이 또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대 사건이 벌어졌다. 나이 오십이 되고 나서는 잘 없는 일이었다. 화분이 없어서 달맞이꽃을 심었던 화분을 엎었다. 그런데 손끝이 어설픈 내가 그 뿌리를 다 제거하지 않은 채 대충 뿌리를 걷어내고 흙을 재사용하여 화분에 매발톱 씨를 뿌려 죽도 밥도 아닌 결과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머리카락처럼 가늘어도 뿌리에서 순을 올릴 수 있는 달맞이의 생명력을 무시했다가 매발톱보다 달맞이 순이 더 많은 화분이 되고 만 것이었다. 달맞이 순을 올라오기가 무섭게 다 뽑아야 했다. 그러다가 전에 함께 잠시 남편과 텃밭 농사를 했을 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같이 했었더라면... 한 남자가 한여름 뙤약볕에 나무로 짠 2평 남짓 되는 텃밭의 흙을 바닥까지 긁고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밭에서 나온 부산물, 옥수수 대, 가지 대, 호박 줄기, 오이 줄기 등을 깔고 흙으로 덮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다시 거름이 되어 다음 농산물에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땀은 온몸에서 비 오듯 쏟아지지만 남자는 아내가 귀찮아서 준 일인 줄 알면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원리 원칙에 강한 남자이구나! 무지 꼼꼼하구나! 나는 적수가 못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는 우리가 오산에 살 때였다. 어느 날 남편은 여러 가지 세파로 서로 소원해진 관계를 안정시키려 했던지 ‘내가 뭘 하나 도와주면 좋겠노?’라며 살며시 물어왔다. 나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 조리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도시 농부 살이도 하고 있던 터라 옥상 텃밭 농사를 좀 도와달라고 했다. 농사는 당시 내 취미이자 골칫덩이기도 했던 차였다. 그런데 막상 큰 기대 안 했는데 그렇게 완벽한 조합은 다시 없을 것이었다. 내 텃밭 인생 30년에 채소 공장이 따로 없었으니 말이다. 재개발 대상이었던 그 아파트는 이리저리 치이던 우리를 받아준 한 감리교 목사님이 제공해 준 낡았지만 딱 쓰임새가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힘들 때 그 목사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기 우리는 같이 성경을 공부하며 각자 인생을 개척하는 시기였다. 그러던 중 내가 아이디어를 내어 그 목사님께서 하던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옥상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가르치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학생들의 흥미가 오래가지 못해서 그냥 내가 농사를 예쁘게 지어 주말에 교회 식구들과 함께 수확하고 나누는 교회 텃밭이 되었다. 얼마 안 되어도 혼자 하려니 힘들었는데 이렇게 완벽한 조력자를 만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감동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착착 손발을 맞추어 재미있게 일했다. 나의 작부체계 지식에 남편의 완벽주의 실행 능력을 보태니 뭐든 심는 채소마다 소출이 많아서 나중에는 교회 식구들이 수확하기에 싫증을 낼 정도였다. 이상주의자인 내가 고민만 하다 에너지가 달려 매발톱 사건처럼 슬쩍 넘어가려 하면 꼼꼼한 남편이 그 틈을 확실히 잡아주니 일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이었다. 수확한 싱싱한 채소에 훈제 삼겹살을 구워 싸서 먹으면 너무 맛있었다. 데쳐서 조물조물 나물로 무쳐 먹으면 행복을 찾아 멀리 안 가도 됐다. 잘 먹고 뽀득뽀득 살이 오르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래서 기업들이 ‘유능한 인재, 유능한 인재’ 하나보다 했다. 그전까지 농사는 내게 많은 시련과 인내, 나아가 기다림의 영성을 가르쳐주는 연단의 도구였는데, 그때 이후로는 고난이 끝나고 완전한 참 만족을 경험하는 좋은 도구로 바뀌었다. 옥상 텃밭은 진딧물이라는 자연의 쓰라린 역경에 두 손 들고 말았지만, 이후로 우리는 서로가 힘껏 돕기로 작정하면 어지간히 살아지리란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큰 교훈으로 삼고 훈훈한 부부애에 동료애까지 더해져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 확실히 낫다. 올라오는 달맞이 순을 어지간히 뽑았더니 매발톱 화분에도 어느 정도 안정이 찾아왔다. 우리 부부의 노력에 비해 더 한껏 축복해 주시는 하늘의 기적까지 힘입어 앞으로 세상에 더 유익한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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