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사계가 뚜렷한 기후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이제 우리 계절은 더 이상 확실히 구분되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아닙니다. 아니고 봄 여름 폭염 가을 겨울 이렇게 5계절입니다. 오늘 더위가 끝나야 할 말복인데도 35도, 지금은 세 번째 계절 폭염입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 이렇게까지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한낮 기온 30까지 올라가는 날은 기껏 사나흘이었지요. 7월 말 8월 초 휴가철 더위 며칠만 넘기면 지낼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열대야도 한 달 가까이 이어지니 농부로서의 고충은 열 배, 백 배로 늘어났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아침에 일을 했는데 이제는 아침부터 푹푹 찌기 시작하니 예전처럼 시원할 때가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더워 농사를 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입니다.
예전에는 이맘때 바다를 찾아 여행도 가고 골짝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보냈는데 정말 그때가 그립네요. 폭염의 계절에는 그런 즐거움조차 누리기 어렵습니다. 계곡물은 여전히 흐르지만 아무리 시원한 계곡도 1인칭 폭염 속엔 번거롭게만 느껴집니다. 작물과 화초들도 불볕더위에 타들어 갑니다. 매일 물을 줘도 뜨거운 햇볕 아래서는 빠르게 증발해 버립니다. 예전에는 꽃들이 한여름에도 싱그럽게 피어나곤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더위 속에서 지친 작물들을 보면 이제 농사짓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제는 날씨에 따라 일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폭염에 맞서 싸우듯 농사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작업이 태양과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일기예보를 보며 농사일을 계획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계획조차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더위를 피해서 일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런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이 폭염 속에서 매일 일과를 소화해내는 것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서는,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기 위해, 그리고 작물을 지켜내기 위해 더욱 긴장하고, 대비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와중에 곶감 주문은 꾸준히 들어오는데, 포장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보냉백에 얼음팩을 가득 채우고, 다시 아이스박스에 2중 냉동포장을 하니 손이 많이 갑니다. 예전에는 아이스박스에 얼음팩 한두 개만 넣어도 됐지만, 이제는 보냉백까지 2중으로 냉동 포장을 합니다. 다행히 요즘 택배는 하루만에 배달을 해주기에 배송 사고는 없습니다.
세 번째 계절로 뚜렷이 구분되는 폭염은 단순히 날씨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생계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자연의 변화가 바로 삶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매일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적응과 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더위를 피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괴물처럼 등장한 세 번째 계절 속에서, 그저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에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우리가 잘 쓰는 활, 총, 칼 대신 지혜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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