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이다.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기도를 했다. 잠시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하늘에 통보했다. 정성과 열정을 다해 주님을, 사람을 섬기고 있으니 나에게도 누군가의 정성이 한껏 묻어있는 선물을 하나만 주십사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 어쭙잖은 말솜씨로 전도를 했는데 알고 보니 화가셨다.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내 생애 가장 애틋했던 한때를 보낸 거제면 시장을 담은 거제장터 그림을,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로부터 말이다. 꿈같은 시간들, 사춘기의 객기를 잡아주었던 나의 놀이터. 잔망스러움이, 들뜸이, 호기심이 폭발하기 전에 사람들 틈에서 열을 식혔던, 산만함이 다시 차분함으로 변할 수 있었던 그 장소. 나만 안다고 생각했던 그 장소...
그림을 선물로 받고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나의 눈물, 나의 좌절, 나의 일어남... 그것이 내 생애 가장 큰 우상이 된다하여도 탈진한 나는 그냥 그 그림이 좋았다. 그 후로 이사 가는 곳마다 들고 다니다 지금은 통영 집에 걸어두었다.
한참을 지나 누군가를 향한, 세상을 향한 섭섭함을 거두고 다시 중보기도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그 화가 할아버지가 힘을 보탰다. 얼마 전 출간한 시문학집 ‘대지를 적시는 비’를, 그냥 잊히기 싫었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내어, 굳이 기억해 달라 보채듯 보냈는데 연락이 왔던 것이다. 잔칫집에 갔다가 늦게 서야 맛난 음식 한보따리 들고 돌아온 엄마의 귀환처럼, ‘나 사실 이런 사람입니다’ 변호하듯 보낸 마음 담은 나의 편지에 답이 온 것이다. 책을 받아 잘 읽고 계신단다. 이번에도 ‘선생님 나의 주인을 한번 믿어 보십시오’ 권했다. 호소력 약한 두서없는 전도. 어떤 영혼의 영원을 되돌리는 일. 나는 솔직히 그 문 앞에만 평생 서있고 싶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시를 써서 나누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다렸다. 늘 생각대로 되진 않을 테지만 제일 가까운 자녀와 부모형제 만이라도 잘 알아줬으면 했다. 할아버지는 매일 내 책을 읽고 계신다고, 2집 나오면 꼭 보내 달라 하셨다. 이런 순간을 기대하며 쓴 글들이었지만, ‘과연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교회 꼭 가시라 당부했다. 같이 천국 가시자 했다. 그런다 하셨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 그림의 가치만큼은 했지 않나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했다.
기회는 오면 붙잡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몸을 드려 죄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만들어준 예수님처럼 누군가의 희생으로, 중보로, 수고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가 나의 정서적인 채움을 그림을 통해 받은 것처럼, 그 할아버지도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받았으면 너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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