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찬란한 기술문명의 바탕에는 과학혁명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축적되어 온 과학이 있다. 특히 뉴턴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인식체계를 보통의 감각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극미의 세계로 이끈 과학이 양자역학이다. 전자와 같은 미시적 대상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뉴턴 물리학은 전혀 무용지물이었으며, 약 100년 전에 완전히 새롭고 혁명적인 사고와 개념이 도입되어야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이 소위 ‘양자상태’라는 것으로 입자의 파동성을 근간으로 슈뢰딩거가 도입한 파동함수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보어,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코펜하겐 학파의 과학자들은 이를 확률로 해석함으로써 지금의 주류 해석 체계를 성립시켰다. 그 후로 양자역학은 물질의 근간인 원자에 대한 이해로부터 많은 미시적 대상에 적용되었고 그로부터 반도체, 레이저, 초전도체 등의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를 응용하여 전자공학이란 기술혁명을 이끌어냈다. 현대의 인간이 전자공학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성과인 것이다.생명현상에 대해서도 양자역학은 수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힘으로써 분자 단위에서 생명을 이해하고 이를 기술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양자역학과 생물학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또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개발된 여러 진단 및 치료 기술을 통해 의료의 영역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양자역학이 모든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양자역학의 주류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은 모두가 흔쾌히 동의하는 해석이 아니며,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주류 해석을 공격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양자역학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대상을 복잡한 환경과 분리시킴으로써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정은 뉴턴 물리학과 정확히 동일하다. 생명은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은 그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실제로 생명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매우 비선형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대상을 주위와 분리시키는 어떠한 과학도 정확하게 적용될 수 없다. 양자역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간혹 양자역학이 마치 모든 요소들 간의 긴밀한 연결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대개 양자역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핵분열이란 현상 자체는 외부와 분리된 상황에서 과학의 예측대로 정확히 작동하지만 핵발전소가 우리 삶의 공간과 연결되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후쿠시마에서 방출하고 있는 오염수의 방사능 수치는 측정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 물이 바다 생태계로 흘러들어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며 그것이 우리 인간의 건강에 어떻게 피해를 줄지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는 인류가 오랫동안 날씨를 예측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지만 여전히 잘 맞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연결된 전체를 고려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것이 소위 ‘복잡계 과학’으로 앞의 글들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기후 체계, 생태계, 경제 시스템, 주식시장, 인간 사회 등 개별 구성요소가 전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분리된 부분만의 이해를 통해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복잡계 과학은 기존의 양자역학과 같은 정확한 예측을 이루어낼 수 없다. 사흘 후 정오에 우리 집 마당의 공기 온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전반적인 공기 흐름의 변화를 기초로 확률적인 예측이 가능할 뿐이다. 이는 과학의 어떠한 관점도 총체적으로 연결된 생태계의 변화를 오차 없이 정확히 읽어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단지 과거의 수많은 경험적 자료들을 토대로 이후 어떤 패턴으로 변화할지에 대해 대략의 예측이 가능할 뿐이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기를 맞이한 우리는 어떻게 현명한 지혜를 찾을 것인가? 이것이 다음의 이야기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