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6.25 한국 전쟁 74주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잔인하고 파괴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자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공산정권을 세우고 무력통일의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들은 면밀하게 침략을 계획해 놓고 1950년 6월 7일에 방송을 통해 광복 5주년 기념일에 ‘남북통일 최고입법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해 놓고는 남침을 진행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 우리나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소련이 지원한 탱크를 앞세워 내려오는 북한군을 소총으로 막을 길 없어 용사들이 맨몸으로 막았습니다. 불과 3일 만에 서울에서 대전으로 정부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 때 미국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국제연합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대전에서 대구로 내려와 있던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제 남한은 대구와 부산만 남겨 놓은 채 적화 통일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럴 때 맥아더 국제 연합군 총사령관은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삼고 반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군은 여기서부터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수도 서울이 함락 된지 3개월 만에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UN군과 국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했고 서울을 빼앗긴 지 3개월 만인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그 후 모든 전선에서 유엔군과 국군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북진을 거듭하여 이번에는 평양이 함락되고 두만강과 혜산까지 진격하여 곧 통일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51년 1.4 후퇴입니다. 결국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3년을 끌어오다가 서로 지친 상태에서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이해하는 과거 74년의 역사입니다. 이제 시간은 흘러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70대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6.25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분명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사상(思想)이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온 가족을 몰살하였고 한 동네가 모두 불태워졌습니다. 가장 잔인스러웠고 가장 비인륜적인 범죄의 행위였습니다. 6.25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참상이 벌어졌었습니다. 3년 동안에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습니다. 전쟁처럼 비참한 비극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명목의 전쟁이든지 전쟁 자체를 미화시킬 명분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6.25와 같은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이 땅에서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적 무신론의 반기독교적 사상입니다. 그래서 혁명에 성공한 스탈린이 가장 먼저 교회를 탄압했습니다. 공산주의의 원조(元祖)인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는 실패한 정치체제임을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사상이 나왔습니까? 과거의 제정 러시아는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동자 농민들을 대할 때 성경의 가르침대로 못했기 때문에 소련의 10월 혁명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 교훈을 되새길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관심과 무지로부터 깨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평화와 번영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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