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변함없이 여름이 다가왔다. 그러나 어떤 재앙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 이어 평균기온을 비롯한 여러 기후 지표들이 올해 들어서도 계속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WMO(세계기상기구)의『지구 1년-10년 기후 업데이트』 보고서에 의하면 월별 지표온도에 있어서 벌써 12개월째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오고 있으며 11개월 연속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1.5를 초과하는 온도를 기록했다고 전하고 있다. 1.5도는 10년 전 파리 기후협약에서 정한 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이다. 물론 1.5도 상승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이후의 데이터가 더 필요하지만 당시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기온은 오르고 있다.
따라서 이후의 전망 역시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다보스 포럼’이라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전 세계 위험 보고서 2024』에서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파괴력을 지닌 위험 요소’는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1위가 ‘극한기상’이다. 2위는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정보, 3위는 사회, 정치적 대립이라고 한다. 세계가 기후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대량 멸종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으며 기후위기 상황을 넘어 기후 재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온난화를 막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 날 한 시에 모든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이상, 몇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특히 양극화로 다수의 삶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이고 세밀한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요 정책의 흐름은 선거를 통해 변화가 일어나므로 4.10 총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여당의 최대 참패와 야당의 압승이다. 현 정부의 총체적인 무지, 무도, 무능을 국민들이 분명하게 심판한 것으로 그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부를 거부할 것이라는 민심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실제로 현 정부는 모든 점에서 그 어떠한 국가적 비전이나 철학을 제시한 적도 없으며 여당 역시 그런 대통령의 호위무사 역할 말고는 아무 것도 내놓은 게 없다. 그런데 선거를 통한 심판은 당했음에도 여전히 대통령을 정점으로 정부 여당은 심판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나라가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작 심각한 점은 이제는 너무 뻔히 보이는 기후 재앙 관련 이슈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이다. 국정을 책임져야 함에도 기후 관련해서는 별 대책이 없는 여당은 물론 제1당이 된 민주당 역시 정부 심판에 올인하면서도 기후문제를 뒷전으로 내몰았다. 실제로 기후 관련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전체의 24%에 불과했다. 정당별로 보면 녹색정의당이 100% 후보가 공약을 제시한 반면, 국민의 힘 15%, 민주당 39%, 심지어 개혁신당은 43명 후보 중 고작 1명이었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녹색정의당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면서 그 영향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반하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절반 이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차장 확대, 그린벨트 규제 완화, 공항 건설 등이다. 대체로 지역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개발공약들이다.
무능한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에 집중했던 민심이 앞으로는 기후 대응으로 옮아가야 한다. 입법 주도권을 쥔 야당은 상시적으로 기후 관련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재앙에 대비하고 소외된 계층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며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아울러 OECD 전체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입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정치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이제 개인의 실천만으로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을 넘어 서로 연대함으로써 정치권이 모든 힘을 쏟도록 민심의 횃불을 들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재앙으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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