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중학교 교문은 우리나라 여느 학교의 교문보다 위풍당당 품격이 돋보입니다. 고맙게도 함양중학교 26회 졸업 동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대문을 세웠습니다. 명품 대문을 지나 비룡 향학로를 따라 교정에 들어서면 운동장 입구에 당당하게 서 있는 돌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70년 9월 16일 개교 24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14회 동문회와 로씨 화수회가 후원하고 졸업생 로평식이 만들어서 세웠습니다. 돌탑에는 “청소년들이여! 꿈을 가져라. 꿈은 그대들의 희망이요 인생의 생명수이다.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써 밝은 내일을 위해 참된 꿈을 키우자!”라는 글귀가 검은색 돌판에 휴먼옛체로 야무지게 새겨져 있습니다.
제가 함양중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 중반 무렵에도 돌탑은 어린 소나무를 좌우에 두고 현재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지금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청년이 된 소나무의 자태도 가히 국보급 일품이고, 돌판에 새겨진 글귀도 청소년을 격려하는 문구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푸른 소나무와 격조 있는 돌탑을 마주 대하다 보면, 학창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이 길을 오르내렸던 저의 모습이 겹쳐 떠오릅니다. 어제 내린 비로 삼라만상 초록빛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화란춘성 만화방창 놀기 좋은 봄날이지만 체력을 기르고 공부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시절입니다. 선비정신 이어가는 청춘 함중 건아들에게 ‘큰 꿈을 가져라’ 돌탑 글귀의 내력을 안내·설명하고 격려했습니다.
비단잉어 코이라는 물고기는 어항에 기르면 6cm 정도에 머물지만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서 기르면 20cm 정도로 큽니다. 강물에 방류하면 1m 넘는 크기로도 자랍니다. 즉, 자라는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물고기 코이는 삶의 터전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함양중학교 학생 여러분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치고 살아갈 곳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 같은 크기의 코이로 살 것인지, 아니면 상어 크기의 코이로 살 것인지의 선택은 온전히 여러분 자신의 몫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사례는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가난한 가정에 일란성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동생은 일류 대학의 훌륭한 교수가 되었으나 형은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자란 집에 걸려 있던 ‘Dream is nowhere’(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라고 써진 액자를 보며 형은 삶을 비관하였지만, 동생은 ‘Dream is now here’(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읽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고 합니다. 큰 꿈을 가진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이렇게 엄청납니다. 가수 인순이는 ‘거위의 꿈’이란 노래에서 거위도 날려는 꿈이 있기에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거위도 그럴진대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꿈이 없거나 헛된 꿈을 좇아 망상에만 젖어 있으면 일상은 무료하고 건조해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졸 수밖에 없고 어른들은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제법 먼 길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이/ 세상에 있나 해서/ 길따라 나섰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없는 그리움이/ 나에게는 힘이 되어/ 내 스스로 길이 되어/ 그대에게 갑니다” 안도현의 시 ‘나그네’는 지금 이 자리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주는 시라 할 수 있습니다. 끝없는 그리움을 가졌느냐고 묻고는 그리움과 간절함을 가졌다면 됐다고 답합니다. 그리움과 간절함이 길이 되고 힘이 되어 줄 것이며 언젠가는 그 꿈을 꼭 이뤄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선비의 얼을 품고 비룡 향학로를 오르내리는 함양중학 건아들이여! 자강불식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움과 간절함을 가지고 학업에 정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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