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중국의 해외직구 플랫폼인 테무의 슬로건입니다. 싼 인건비와 물류비를 무기로 공습이라 할 정도로 초저가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알리 익스프레스가 토종브랜드인 업계 1위 쿠팡을 위협하고 지난해 7월 상륙한 테무의 이용자 수도 곧 천만 명을 돌파할 기세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승객 대다수가 스마트 폰을 이용하고 있는데 아마도 절반 이상이 테무나 알리의 앱을 이용해 최저가 상품을 비교 검색하며 쇼핑에 열중하고 있는 겁니다. 고물가시대에 값싸고 다양한 물건을 해외에서 직접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이 소비자로서는 다행이지만 급증하는 해외직구가 국내산업을 위협하고 중소제조업체나 도·소매상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안전성이나 환경문제도 적지 않아서 무어라도 해야 하는 정부가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강화 및 기업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여당과의 협의도 없이, 대통령 실도 모르게 불쑥 발표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가세해 “직구 금지령”이 과도한 규제이고 소비자 선택권 제한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발표 3일 만에 철회하고 이례적으로 대통령 실까지 나서서 공식 사과하는 일이 벌어 졌습니다. 어찌 보면 꼭 필요하고 시급한 대책인데 총선에 패배하며 힘이 빠진 정부의 자신 없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해외직구 금지령”을 빌미 삼은 여권잠룡? 들의 SNS 정치가 세간의 주목을 끌고 뉴스가 되었습니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저도 가끔 해외직구를 한다”라며 “해외 직구시 KC 인증 의무화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고 존재감을 드러냈고 유승민 전 의원도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날을 세웠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감하게 “정부 정책의 방향은 옳다”라며 비판자들의 ‘처신’을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해외직구에 따른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현직 행정가의 충정은 공감하지만 어느덧 60대 중반이 된 오 시장이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의 처신을 거론한 것은 실수로 보입니다. 본질과는 관계가 없는 태도와 처신을 언급하며 가르치려 드는 것은 권위적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갓 50을 넘긴 명민한 한 전위원장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건설적인 의견 제시를 ‘처신’ 차원에서 다루는 것에 공감할 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오시장의 꼰대 짓을 직격하고, 오 시장이 장황히 해명하면서 “처신이란 표현은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한발 물러섰는데 앞으로 펼쳐질 여권의 대권 드라마의 예고편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어려운 시절입니다. 돌이켜 보면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 같지만 그저 열심히 일하고 성장하던 시대와는 사뭇 다른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치적 혼란이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원래 그런 것이라 하면 견딜 만 하지만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 경제와 기업이 흔들리고 민생이 고달파집니다. 해외직구를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데 혹시 해외직구에 대한 정부의 섣부른 대응이 테무나 알리 같은 중국 기업의 홍보에 도움을 준건 아닌지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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