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은 이 땅에 라면이 배고픈 서민들의 서러움을 달래기 위하여 태어난 해이다. 그러니 2024년은 라면이 환갑을 맞는 해이다. 첫 라면의 이름은 삼양공업(삼양식품)의 삼양라면이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라면은 명실공히 한국 음식 하면 떠오르는 비빔밥, 김밥, 불고기와 함께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다. 전문 사이트 ‘라면 완전 정복’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시판 중인 라면 종류만 555개인데, 이젠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살찌우고 있다며, 즉석 면류 수출액은 지난해 처음 1조원(1조1400억원)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작년에 해외로 수출한 라면은 26만톤, 면발 길이만 약 1억㎞다. 지구를 2670바퀴나 감을 수 있다고 하니 과히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라면은 우리에게 고마운 음식이다. 라면은 배고파서, 심심해서, 즐거워서, 먹고살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환갑을 맞은 라면은 이제 K-라면으로 세계 음식 역사를 새로 쓰고 있으며 한국 문화와 음식을 알리는 일등공신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K-라면이 탄생하기까지 60년 전 한일 두 기업인의 눈물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바로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자와 오쿠이 기요스미 일본 묘조식품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자료에 의하면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부사장을 지내고, 제일생명 사장을 하던 전중윤님은 1961년 8월 서울 하월곡동에서 2년 전 일본 출장에서 맛본 라면을 만들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 이유인즉슨 점심시간 남대문시장에서 미군 부대 잔반으로 끓인 꿀꿀이죽(일명 유엔탕)을 사려는 긴 줄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또한 직접 먹어 보니 깨진 단추는 물론 담배꽁초까지 나온 것을 보고 그는 “동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밥 한 끼인데, 미래를 준비하는 보험이 무슨 소용인가. 값싸고 배부를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 라고 결심하고 이 일에 헌신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창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는 결국 라면의 원조국이며 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을 생각하며 “일본에 가서 기계와 기술을 사오자”는 결심으로 사재를 털어 자금은 마련했는데, 달러 구할 방도가 없었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말처럼 당대 최고 실세 김종필 중앙정보부 부장을 찾아가 “혁명을 왜 했느냐. 국민 잘살게 하자는 것 아닌가” 하며 설득하였고 이에 5만 달러를 지원받아 1963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 라면업체와 또 다른 라면 기업 등을 찾았지만 죄다 퇴짜를 맞았다. 낙담한 그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묘조식품이었고, 사장이 오쿠이 기요스미였다. 오쿠이 사장 전중윤에게 “왜 라면 사업을 하려는가”라고 물었다. “꿀꿀이죽 먹는 동포들이 더 이상 배곯지 않게 구하고 싶다”. 오쿠이 사장은 침묵하며 깊이 생각에 잠기더니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했다. 다음 날 찾아가니 오쿠이 사장 옆에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제면기 업체인 우에다 사장과 튀김 가마 제조 업체인 오쿠타니 사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오쿠이 사장은 “선생을 전적으로 돕겠습니다. 기술료와 로열티는 받지 않겠습니다. 기계 값도 실비만 받겠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6·25 한국전쟁으로 일어섰습니다. 묘조식품이 직접 그 혜택을 입은 건 아니지만 받은 은혜를 갚겠습니다. 내일부터 두 사람에게서 기술을 배우세요” 그렇게 열흘 동안 배웠지만 수프 제조법만큼은 알려주지 않았다. 묘조의 핵심 경쟁력이었기에, 혹 다른 업체로 흘러갈까 우려해서였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서운한 마음과 무거운 마음으로 오른 귀국길에 오쿠이 사장 비서가 공항에 밀봉한 봉투 하나를 들고 왔다. 봉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수프 배합표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저 말고 회사에 몇 사람 없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배고픈 사람을 위한 좋은 제품을 만들기 바랍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이 맺은 11개 항의 계약은 ‘생명을 살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약’이라 생각한다. 드디어 생산된 삼양라면 출시 가격은 10원이었는데 이는 ‘꿀꿀이죽’이 5원을 감안한 가격이었다. 당시 커피 35원, 담배 25원인 시절, 오쿠이 사장이 ‘너무 싸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중윤 사장은 ‘막노동 일당이 100원인데, 그나마도 매일 일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 가격은 지켜야 한다’고 소신을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사람은 100살을 살지만 1000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다. 이기주의로 삭막한 이 세상에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 라면 만큼이나 정말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 속에서 라면으로 행복했던 그리고 행복할 날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감에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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