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하순. 정원에 장미가 절정이네요. 수많은 장미들이 화려하게 피고 있습니다. 자랑할 만한 장미 정원을 만들려고 많이 심었는데 막상 정점에 이르니 기대했던 만큼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많이 핀만큼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유월 초에 서울 친구들이 놀러오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계속 피어있어야 할 텐데 조바심이 납니다. 차라리 장미가 피기 전 사월이 행복했습니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장미가 언제 피나 지켜보며 꽃봉오리가 한 두 개만 보여도 가슴이 두근두근했지요. 지금은 백만 송이가 활짝 피었지만 오히려 피기 전에 가슴이 더 뛰었습니다. 오월 하순인데 해가 뜨겁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해서 긴팔을 입지만 해가 조금만 높아지면 기온이 쑥쑥 올라갑니다. 화분에 심은 화초는 물 관리 안 해주면 허리가 꺾입니다. 이렇게 쨍쨍한 날씨에 빨래를 널면 반나절이면 뽀송뽀송하겠네요. 오늘 아침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넣었습니다. 세탁이 끝나 건조기로 옮기면서 이런 날씨엔 굳이 건조기 안 돌리고 바깥에 널어도 더 잘 마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지난 해 세탁 건조기를 처음 들였을 때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세상에 이 좋은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하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요즘 건조기는 당연한 것이고 무심하게 사용하네요. 오월 하순이라 마당 여기저기 까만 오디가 떨어져 있습니다. 뽕나무 아래가 아닌데도 오디가 많이 보이는 것은 새들이 잔치하다가 흘린 것으로 보입니다. 앞마당에도 뒷마당에도 뽕나무 고목이 있는데 까만 오디가 엄청 많이 달렸습니다. 이십여년 전 도시에서 막 이사 왔을 때는 오디가 탐스럽고 신기해서 매년 오디를 털어 생과로 먹고 발효액도 만들었습니다. 한 해는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가 목이 말라 오디를 한주먹 따서 입에 털어 넣었는데 급히 먹느라 노린재가 숨어있는걸 보지 못했습니다. 오디와 노린재를 같이 씹는 바람에 사흘간 노린재 냄새에 치를 떨었는데 밥을 먹으면 노린재 밥, 맥주를 마시면 노린재 맥주가 되어 고생했습니다. 이제 오디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달렸지만 쳐다보지 않은지 십수년 되었습니다. 오디는 이제 물과 공기처럼 귀한 줄 모르는 새까만 무엇일 뿐입니다. 이맘때는 뽕나무 그늘에 차를 주차할 수가 없어 불편하기만 합니다. 김치찌개를 만들려고 김치냉장고를 열고 싱크대 찬장을 열고 냉동실을 열고 냉장실을 열어 눈에 보이는 대로 재료를 꺼냈습니다. 묵은 김치는 이제 한포기 남았네요. 돼지고기 대신 참치 캔이 있습니다. 찌개를 끓이다가 나중에 두부를 넣어야 하는데 생각 없이 묵은 김치, 양파, 대파, 고춧가루, 청양고추, 간 마늘, 국 간장. 설탕까지 한꺼번에 같이 넣고 센 불로 보글보글 끓였습니다. 맛을 보니 기대보다 괜찮아 아들과 맛있게 먹었습니다. 요즘 요리가 재밌네요. 최근에 베이킹을 배워 제과점에 파는 빵을 한번 씩은 다 만들어봤습니다. 빵은 갓 만든 것이 맛있습니다. 아들은 요즘 찰떡을 만들어 매일 아침 식탁에 올려줍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재밌습니다. 꽃은 피기 전에 가슴을 더 뛰게 한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