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읍내를 걷다보면 담장 너머로 붉고 노란 장미가, 대문 옆 화단에는 작약, 수레국화 등 온갖 꽃들이, 짙은 초록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서게 한다. 가히 봄날의 향연이라 할 만 하다. 이런 형형색색의 정경을 마주치다보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 69~1954). 미술사가들은 마티스를 ‘야수파’, ‘색의 마법사’라 부르며, 피카소와 나란히 20세기 거장으로 평가한다. 마티스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일까? 법률사무소 서기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19살에 맹장염으로 입원하게 되는데, 무료하게 지내는 아들에게 소일거리삼아 어머니가 그림도구 ‘물감상자’를 사다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 순간을 ‘일종의 낙원’을 발견했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구스타프 모로의 아뜰리에를 찾아가서 본격적으로 그림수업을 받게 된다. 어머니의 물감상자가 아니었으면 마티스의 운명을 어디로 흘러갔을까?     마티스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그림은 단연 아내 파레르가 모델이 된 <모자를 쓴 여인>(1905)이다. 그때까지 화가들이 그리던 전통적인 초상화의 공식을 완전히 깨부순 파격 그 자체이다. 강렬한 원색의 사용, 거친 붓터치와 파격적인 구도의 이 초상화는 아름답지도 멋있지도 않아서 세간의 평도 혹평 일색이었고, 정작 파레르도 그 그림을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우리는 마티스 하면 <춤>(1910)을 대표작으로 떠올린다. 이 그림은 마티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세르게이 시츄킨의 부탁으로 그린 대형 그림이다. 시츄킨은 이 그림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평단에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은 마치 원시적인 종교 의례같은 느낌을 준다. 하늘, 땅, 사람을 표현한 세 가지 색, 표정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단순화된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집중하게 하여, 깊은 감정과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 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패러디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마티스는 1941년에 암 판정을 받고 건강이 나빠져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는 바람에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지만 포기를 몰랐다. 붓 대신 가위를 잡고 종이에 물감을 입혀서 오려붙여서 작업을 계속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우리가 사랑하는 색, ‘마티스 블루’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지금도 고민하고 모색하는 많은 작가들에게 그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젊은 화가는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원래 그림은 가장 황당한 모험과 부단한 탐구를 일컫는 말이 아닌가? 방황하면 어떤가. 한번 방황할 때마다 그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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