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계절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소설(음천)을 읽고 있는데, 추가로 재밌을 것 같아 주문한 수필집(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김미옥)도 도착했습니다. 음천은 재미 한인작가 이매자의 첫 한국어 소설인데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작가의 시적인 언어에 홀려 마술에 걸린 듯 읽을 것입니다”라고 소개해서 사흘째 읽고 있지만 아직 반의 반의 반도 못 읽었습니다. 한번 잡으면 금새 다 읽을 것 같은 재밌는 소설이 분명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으니 엉덩이가 들썩거려 도무지 집중이 안 됩니다. 황금 같은 날씨에 정원 장미가 다투어 피기 시작하니 책을 읽다가도 문득 문득 내가 지금 왜 책을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책을 탁 접고 장미 화단 앞에서 어슬렁거려봅니다. 그냥 가만있어도 좋은 계절입니다. 요즘 한 달째 상가를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2년 전 귀농해서 곶감 농사를 도와주고 있는 아들이 이제는 독립하겠다고 하네요.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장사는 목이라 접근성이 좋아야 하는데 그런 자리는 흔치 않네요. 세가 비싸더라도 목이 좋은 자리를 고집하니 발바닥이 아픕니다. 맛과 기술은 물론 기본이지요. 함양 읍에 비어있는 상가는 제법 많습니다. 대부분 장사가 안 되어 접었다고 합니다. 음식점 개인 창업은 20%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평균 2년6개월 하고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체인점은 그래도 좀 성적이 낫다고 하네요. 아들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오랫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왔기에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한 계절입니다. 지난 겨울부터 어금니 임플란트를 하고 있는데 어제는 거의 마지막 수순인 본뜨기를 하고 왔습니다. 임플란트는 처음이 아니라 본뜨기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무 질감의 석고를 5분 정도 물고 있다가 뜯어내면 되는 간단한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간호사가 파란색 석고 뭉치를 가져오지 않고 어군탐지기처럼 보이는 기계를 끌고 오더니 입에 숟가락 크기의(작은 바퀴가 달린 듯) 기구를 넣고 이빨 안 밖으로 빙빙 굴리며 탐지 작업처럼 하는데 별로 유쾌한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발전된 기술인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간호사가 최신 기계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왜 안되지? 왜 인식이 안 될까?” 하고 중얼거리며 혼자 30분은 입안을 헤집었습니다. “아~ 벌리세요~ 잠깐 다무세요~” 간호사 시키는 대로 입을 벙긋벙긋하다가 힘들고 화가 나 벌떡 일어나서 “왜 옛날처럼 하지 않고 이런 바보같은 방식으로 하는 겁니까?”하고 소리를 꽥 질렀는데, 다행히 입에 기구가 들어와 있어 실제로 소리가 나지는 않았네요. 어쨌든 솜씨 좋은 간호사가 와서 어군탐지 작업은 마무리 되었고 2주 뒷면 새 치아가 생깁니다. 휴~ 정말 그냥 가만있어도 행복한 계절입니다. 장미가 앞 다투어 피니 거실창으로 달콤한 향기가 들어오네요. 날씨가 좋으니 무얼 해도 다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직은 모든 장미가 절정은 아니지만 이제 파도처럼 계속 밀려올 것입니다. 오늘은 장미 아치에 풍경을 하나 달았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윈드 차임의 맑고 고운 선율이 마치 클래식 악기가 연주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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