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나의 내면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들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의 질문이 이것이다. ‘인간의 삶에 과연 정치적 활동이 필요한가? 온전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로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며 정치적 활동을 하는 정치가가 필요하고 정치인들에게 지위와 권력을 주는 정치 행정 시스템이 필요한가? 만약 인간 세상에 정치가 없어지고 정치적 방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소통과 조율과 조정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정치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가장 합리적인 민주주의 제도라고 자부하면서 운영하고 있던 현대의 선거 민주주의가 도대체 옛날 군주나 왕에 의한 독재 정치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아니 차라리 그들 간의 공통분모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면 더 빠른 답에 이를 수 있겠다. 그 공통분모는 거의 절대적인 권력이지 않는가? 선거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서 불특정 다수가 선택한 지도자에게 4~5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조건으로 해서 일국의 왕이 누렸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한다. 그 지도자는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여전히 전쟁도 불사할 수 있는 초강력 권력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나는 반문을 한다. 일국의 지도자를 위시한 정치 활동과 그 체계를 통해서 인류의 평화와 공존과 상생의 가능성이 실현되어지는 방향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과 전쟁의 가능성에 불을 지피는 행동과 결정들이 그들 게임의 목표라면 그러한 정치 활동과 체계의 주체 즉 국가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무슨 근거로 유익한 것이겠는가? 현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이 무수한 전쟁으로 자기 파멸을 선택했던 자기 조상들의 수치와 후회를 반복하겠다고 나서고 있음을 보라. 근본적으로 개개인은 그러한 정치적 결정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었다. 누구라도 태어나서 보니 한 국가가 그 개인을 국민으로 흡수했던 것이지 본연의 존재가 어느 한 국가의 국민이 되고자 했을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 본연으로서의 한 존재가 국가라는 거대 집단 속에 반드시 소속되어야 하는 어떠한 필연적 인과적 연관이 없음에도 그렇게 얽고 묶었던 장본인은 국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전쟁터로 내보는 것도 국가라는 사실이다. 선한 가치와 신념으로 페이스 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계 많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던 한 분별있는 러시아 청년이 단지 러시아의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총알받이가 아니라면 총알을 박는 자가 되라는 국가의 명령 하나로 지금 이 순간 우크라이나의 어느 시골 마을에 떨어뜨려져 있을 것이 아닌가? 우크라이나 청년은 또 어떠한가? 가자 지구에서 혈전을 벌이는 청년들은 또 어떠한가? 지구에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이제 막 태어나고 있을 어린 영혼들에게 묻고 싶다. 너희들은 이런 지구에 태어나고 싶니? 지금 이 순간에도 초고속 최첨단의 살인 전투기가 하늘을 맴도는 어느 전쟁터에서 태어나고 있을 지도 모를 어린 아기의 영혼에게 묻고 싶다. 아가야 너는 이걸 받아들일 수 있니? 너가 태어날 국가와 이웃 국가가 너의 생명 가치를 원초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이 야만적인 지구인들의 작태를? (현재 세계의 분쟁 지역은 우크라이나, 가지 지구를 포함하여 34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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