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한 번도 못 봤지만 책은 몇 권 읽었다. 영화가 된 소설도 읽었고 에세이도 읽었는데 숫자를 세어보니 다섯권 쯤 되는 것 같다. 그의 글은 잔잔한 일상을 이야기 하면서도 뼈있는 몇 마디를 툭 던지고 잠시 행간의 의미를 짚어보게 한다.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내 생각은 그렇다는 듯 담담하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는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고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고 누군가를 만나 소설을 이야기할 때는 이 책들이 참 좋았다고 말한다. 좋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그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일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사람을 대할 때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던 경험이 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2019년) 폐막작 <윤희에게>는 주제가 묵직하지만 내용은 아련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출간되어 책으로 대면하게 되었을 때 영화 관계자들만 읽을 것 같은 시나리오를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 호감이 갔고, 무엇보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독자에게 전하는 ‘감독의 말’ 첫 문장에 이끌려 샀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로지 침묵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소란스러운 세계에 소음을 더 얹지 않음으로써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어 침묵의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계와 충돌하지 않고 스스로와 불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영화의 민감한 주제를 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조용하고 단정하게 전개되어 일말의 편견이 있는 나도 담담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묵직하면서도 소란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로마의 휴일>이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영화가 그립고, 재방송 채널에서 우연히 <무자식 상팔자> 같은 드라마도 소소하게 웃으며 봤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가 그리운 이유는 거칠고 자극적인 장르에 대한 불편한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흥행을 염두에 두다 보니 점점 더 기상천외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쓰는 것 같은데 그런 류의 영상을 보고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어두워질 것 같아서 기피한다.
선과 악의 대립과 악에 대한 응징의 구도와 장치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 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소소하고 인간적이며 따뜻하고 정겨운데 요즘 이슈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왜 그렇게 기괴하고 살벌한지 모르겠다. 책을 선별하여 사는 것처럼 영화도 선별해서 본다. 개인적 취향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간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과연 피로 맺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함께 한 시간만으로도 가능한 것인지”
영화를 압축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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