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신체 발달 단계를 3단계로 나누면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로 됩니다. 한자어로는 아동, 청년, 노인으로 씁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어린이라 부르고 젊은이를 젊은이라 부르지만, 늙은이는 늙은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나이 많은 분을 ‘노인네, 노친네’라고 마구잡이로 지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늙은이들, 늙은것들’이라는 말뜻을 벗어나지 못하는 낱말일 뿐입니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그들의 은어로 ‘꼰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꼰대’라는 말은 과거에는 노인이나 아버지·선생님을 뜻하는 은어였으나, 최근에는 자기 경험을 일반화해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으로 통용됩니다. ‘젊은 꼰대’라는 말이 있듯이 꼰대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이런 꼰대 곁에 가기를 꺼립니다. 한편 어른으로 대접받고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의 부름말이 ‘어른(어르신)’입니다. 보통 이 말은 아동과 대비되는 성인을 가리키고 자신보다 나이, 지위, 항렬이 높은 사람을 뜻합니다. 즉, 어른이라는 말에는 나이와 경륜이 많아서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느낌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사라져간다’라는 말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어른을 주위에서 찾기 힘들다는 아쉬움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리하여 ‘어른 되기도 어렵고 어른 노릇 하기는 더 어렵다’라고 한탄하시던 그 옛날 참 어른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즈음입니다. ‘줬으면 그만이지’ 책은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의 취재기로 2023년 1월 출판되었습니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뒷모습 김장하 선생은 백발에 허리는 구부정하고 걸음걸이는 불편해 보입니다. 팔십여 년 세월 속 고단했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선생은 보통 사람들은 따라 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약사로 성공해서 큰 부를 일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아프고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나 자신 호의호식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가 꽃이 핀다.’라는 선생의 말씀에서 확고한 무보시 신념과 함께 나눔과 베풂이 일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는데 받은 사람이 일천 명을 웃돈다고 합니다. 백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세운 명신고등학교는 자리를 잡자마자 국가에 헌납했고, 한평생 사업이었던 남성당한약방을 접을 때도 삼십억 원이 넘는 자산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선생의 나눔과 베풂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문화·역사·예술·여성·노동·인권 등 정치를 제외한 여러 곳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도움을 받은 사람은 줄줄이 널렸는데 정작 베푼 사람은 보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은 육십 년 넘게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 땅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새봄을 맞이하여 ‘어른 김장하’ 영화를 보았습니다. 엠비씨경남에서 제작한 한약사 김장하 다큐를 영화로 재편집하여 극장판으로 만든 것입니다. 한약사 김장하도 아니고, 이사장·부자·기부왕 김장하도 아닌 어른 김장하야말로 우리 시대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참 어른이었습니다. 세칭 성공한 한약사로서 풍족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건만 흔하디흔한 자가용 승용차도 없이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선행을 이어갔습니다. 언제였던가 진주시 클럽 대항 테니스대회에서 유행 지난 허름한 체육복에 여사님과 함께 참석하여 선수들을 격려하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봤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진주 남강 다리를 어제도 오늘도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다.’라는 선생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으며 ‘어른 김장하’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이 단순히 육체의 늙음만을 의미하지는 않지 싶습니다. 자연스러운 육체의 노쇠함보다 사고의 경직에서 오는 편견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저는 한평생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선생으로 가정에서는 자식들의 애비로 살아왔습니다. 과연 어른다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꼰대의 삶이었는지 조심스레 뒤돌아봅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남은 삶은 제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며, 존경을 바라기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세상을 복되고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어느 분야 누구에게라도 배우며,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참 어른의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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