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총 262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일이라면 항상 발벗고 나서는 마을이장이들을 우리는 만나볼 수 있다. 주간함양은 ‘우리 마을이장들을 소개합니다’ 코너를 연재해 마을지킴이 이장들을 매주 소개하고자 한다. 각 마을이장으로부터 마을 현황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원정마을(창원리) 동근종 이장(67)   옛날 마을 가운데 우물이 있는데 물이 맑고 질이 좋아 약수로 널리 알려졌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원정(元井)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중앙에 우물은 있으나 이용하지 않고 수도를 사용한다. 이 마을에는 조선 인조때 중국의 대 유학자 동중서의 후손이 중국에서 건너와 이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20여가구에 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소박한 원정마을에는 동근종 이장이 지키고 있다. 동근종 이장은 지난해부터 이 마을을 이끌고 있다. 규모가 작은 마을인 만큼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탓에 여러모로 동 이장의 걱정은 크다. 빈집도 늘어나는 등 앞으로의 전망이 밝지 않지만 동 이장은 움직일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마을의 일들을 돌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 걱정이 되는 부분이 많네요. 어려움은 많지만 마을에 필요한 일들을 성실하게 하나하나 해내면서 이장일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창원마을(창원리) 김종근 이장(62)   창촌, 창말이라고도 부르는 창원(昌元)마을은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마천면내의 세금으로 거둔 차나 약초, 곡식을 이 마을의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오도재를 넘어서 지게로 날랐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숲이 있는데 이곳을 독무정이라고 한다. 조선 인조때 김해김씨가 파주에서 들어와 살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마을의 자형이 마치 거북이 등처럼 생겼는데 양편에 계곡이 있다. 마을 입구에 숲이 있는데 이곳을 독무정이라고 한다. 옛날 강개암 선생께서 혼자 시를 읊으며 노셨다고 하여 독무정(獨舞亭)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유래 깊고 170여명의 많은 주민이 살고 있는 창원마을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김종근 이장이다. 올해 이장직을 처음 맡은 만큼 김 이장의 포부는 남다르다. “우리 창원마을은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올해 처음 이장직을 맡은 만큼 최선을 다해 마을을 이끌어나갈 생각입니다”   양전마을(구양리) 김영호 이장(53)   양정개, 버틀밭이라고 하는 양전(楊田)마을은 버드나무가 많아서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버드나무는 없다. 옛날 강개암 선생의 양진재(養眞齋)가 양전마을과 창촌마을 독무정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양진재의 발음이 변하여 양정재라고 하여 양정개가 된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이것이 한자어로 기록하면서 양전이라고 한 것이다. 양전마을에는 50대의 젊은 이장 김영호 이장이 20여가구 30여명의 주민의 심부름을 담당하고 있다. 15년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올해 처음으로 이장직을 맡게 됐다. 김 이장은 양전마을의 자랑거리로 주민화합을 말한다. “워낙 규모가 작은 동네다 보니 우선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든 주민 화합이 잘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싸움도 없고 모두 친근함을 유지하면서 평범히 살아오고 있죠” 김 이장은 신임 이장으로서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주민 화합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어떤 특별한 각오가 있다기보다 화합이 잘 되는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하도록 이장으로서 노력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구마을(구양리) 서경호 이장(68)   양전동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형국이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옛부터 이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으며 함양의 민요 가운데 “등구마천 큰애기는 꽂감깍이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구절이 전하고 있어 한때 곶감이 유명했던 마을이다. 지금은 고사리가 알아준다고 한다. 40여가구 7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등구마을에는 지난해부터 서경호 이장이 관리하고 있다. 서 이장은 현재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 만큼 마을 안전 문제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보시다시피 현재 마을이 많이 고령화되어 있습니다. 저도 이제 70이라는 나이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마을 내에서는 젊은 쪽에 속하니 마을 어르신들을 살펴드리려고 노력하죠. 안전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어르신들인 만큼 이장으로서 신경을 많이 써야죠” 서 이장은 앞으로 자연재해 예방 차원에서 사방댐 문제 등 숙원사업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오래전 이 마을은 큰 산사태를 겪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전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안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촉동마을(구양리) 장형규 이장(64)   비어있는 대궐이 있다하여 빈대궐이라 불리오던 촉동마을.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궁궐터를 닦아놓고 여러가지 여건상 여의치 않아 추성으로 옮겨 성을 쌓고 궁을 지었다고 전한다. 촉동(燭洞)이란 이름은 마을 뒤 촛대봉이란 산이 솟아 있는데 지관들이 조천납촉(朝天納燭)의 명당자리가 있다는 것에 유래한다. 빈대궐로 불러오다가 마을 학자들이 촉동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이 촉동마을에는 60여가구 100여명이 주민이 살고 있고 장형규 이장이 4년째 이끌고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역사가 깊은 마을인 것과 더불어 청정지역과 수려한 환경을 마을자랑거리로 소개하는 장 이장이다. 장 이장은 마을내 원주민과 귀농귀촌인들이 화합하는데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지금은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화합을 바탕으로 올해는 마을 주민들의 복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이어가겠다는 장 이장이다. “올해는 마을 복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민들이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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