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신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같은 하늘 아래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로 잠깐 낯설다가도 곧바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음의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 고향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주간함양은 매달 한 편씩 연재되는 ‘함양 향우를 찾아서’ 특집을 통해 각지에 있는 고향 향우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라는 친구들이 돌린 롤링페이퍼 질문에 ‘대법관’이라고 적었던 초등학생은 판사와 더불어 헌법재판관이 됐다. “글쎄요. 저는 몰랐는데 제 친구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돌려 적었던 롤링페이퍼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당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저는 장래희망을 묻는 롤링페이퍼에 대법관이라고 써놓았더라고요. 긴 세월이 지나 다시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었죠” 당시 수동초등학교에서 이 롤링페이퍼에 답한 주인공은 지난해 KBS 이사장으로 취임한 서기석 향우다. 헌법재판관 일을 마치고 변호사 생활과 더불어 KBS 이사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서 이사장. 멀리서 고향을 빛낸 인물로 조명 받고 있는 향우 서 이사장을 만나고자 주간함양은 지난 3월22일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KBS본사를 방문했다. 법조인으로서 달려온 길 서 이사장은 수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수동초(44회)·함양중 졸업 이후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21회)을 통과하면서 1981년 판사 임관을 시작으로 법조인의 삶을 걷게 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등을 역임하면서 법조인으로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온 그는 자랑스러운 향우로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판사 시절 당사자 이상으로 소송기록을 꼼꼼히 파악하고 분석한 후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며 구체적 사안에 가장 적합한 결론을 도출해 승복을 이끌어 낸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던 서 이사장.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전직 대통령 사건, 대기업 비리 사건 등 현대사에 있어 굵직한 사건들의 재판을 담당해왔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는 등 이슈화된 사건에서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다수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법조인으로서 이러한 능력들을 인정받아 2013년에는 대법원과 더불어 대한민국 사법부 최상위 기관인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다. 헌법재판관 재임시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심의한 바 있다. 헌법재판관이라는 큰 명예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이와 관련 서 이사장은 재판관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달려온 것이 아닌 판사로서 맡은 자리에 최선을 다하던 와중 찾아온 기회라고 말한다. “저 같은 경우는 헌법재판관이 되겠다라는 목표 같은 걸 정해놓고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판사의 본분을 다하면서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였죠. 제가 그런 지향점을 두고 살아왔다면 상당히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다른 재판관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고 그런 기회를 갖는 데 있어 저는 운이 좋았던 부분이 있죠” 이처럼 화려한 경력과 사회 엘리트로서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고 있는 서 이사장이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결국 인간의 능력은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세운 목표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고향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사법시험을 통과한 사람과 9급 공무원을 통과한 사람이 능력에 있어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법시험을 공부했으니 사법시험을 합격하는 것이고 9급 공무원 또한 9급 공무원시험 공부를 했으니 합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표의 차이고 얼마만큼의 노력이 받쳐주는냐의 문제지 능력의 차이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물론 특출나신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향 후배들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난해 8월 KBS 이사장으로 선임되자 서 이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언론들로부터 조명을 받았고 고향 함양의 많은 이들 또한 그의 행보에 주목했다. 또 다른 삶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고 밝힌 서 이사장이다. “사실 헌법재판관 재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재판을 심의했고 저를 임명한 대통령을 탄핵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고 공언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헌법재판관 일을 끝내고 한 대학 로스쿨에서 석과 교수로 근무를 했고 계속 학교에 있기를 원했지만 여러 사정에 의해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변호사로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는데 뜻밖의 제안을 받은 것이죠.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다짐도 하고 공언도 한 바 있어서 이사장 제안을 받고 굉장히 망설였습니다. 그러한 고민 끝에 대한민국에 태어나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이사장직을 수락하게 됐습니다”“고향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선명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어린 나이에 일찍 고향을 떠나 성공의 길을 정신없이 달려왔던 그이지만 고향에 대한 추억만큼은 여전히 선명하다고 말하는 서 이사장이다. 당시 동네에는 큰 놀거리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 동네 물가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순수했던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수동 냇물에 발을 담그고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물고기를 잡아먹던 그런 기억들이 납니다. 당시에는 특별한 놀이라는 것이 없어서 하루 종일 물가에 살다시피 했는데 그때 수영을 정말 잘했었습니다. 엄청 오래되고 어릴적 이야기지만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선명하네요”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현재 수도 서울에서 고향 함양을 지켜보고 있는 서 이사장. 끝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추억을 만들어가며 지역에 머물고 있을 어린 고향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지역의 어려움과 상관없이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과 그래야 후회가 없다는 말을 고향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네요. 꿈과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한 발 한 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고향 함양군에도 앞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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