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고양이가 싸우나 봐~” 지난 휴일 점심 식탁에서 아내가 말을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잘 못 들은 거겠지~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하니 아내도 그런가 하고는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의심스러운지 아내는 밥을 서둘러 먹고는 마당을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고양이는 싸울 때 끔직하고 무시무시하게 하악질을 합니다. 하지만 울림이 없는 쉰 소리기 때문에 멀리서는 바람소리와 구분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모시는 뒷마당에 있는데 수리가 안 보여~ 아침부터 계속 안 보이네~ 얘가 어디 갔지?” 그날 해거름 종일 안 보이던 수리가 뒷다리를 끌며 기어 왔습니다. 싸우다 크게 다친 것입니다. 수리는 4살 난 중성화된 수고양인데 원래 성격이 온순하고 사교성도 좋습니다. 산책을 갈 때 부르면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개냥입니다. 정말 순한 녀석인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가끔 보이는 하얀 장화신은 검은 고양이랑은 원수처럼 싸웠습니다. 벌써 두 번째인데 첫 번째도 주둥이가 찢어지는 등 상처가 컸지만 이번에는 목숨만 겨우 살아온 패잔병처럼 보였습니다. 밥도 안 먹고 보일러실 구석에 있는 따뜻한 고양이 집에 들어가더니 다음 날 오후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죽은 듯 잤습니다. 병원에 데려가려고 만지니 아프다고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 포기했습니다. 허리와 가슴에 핏덩이가 보였고 이빨에 물린 상처가 상당히 깊어 보였습니다. 동물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처방받아 오니 수리는 뒷산 양지바른 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외상도 외상이지만 내상을 더 크게 입은 것처럼 보였고 죽을 자리를 찾아 간 것 같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정말 크게 잘못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사나흘 지나자 회복되었습니다. 내상은 입지 않은 듯 상처도 다행히 곪지 않았습니다. 중성화 한 수고양이는 영역표시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힘겹게 회복한 수리가 집 주변 나무에 꼬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영역표시를 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비록 중성화 되었지만 하얀 장화신은 검은 고양이와 싸우고 난 뒤 본능이 살아 난 것입니다. 검은 고양이가 만일 수리 정도 부상을 당했고 다행히 회복되었다면 언젠가 다시 싸우러 올 것입니다. 고양이는 원래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공기가 차갑습니다. 집 뒤 텃밭을 지나다가 언뜻 검은 고양이를 본 것 같아 후다닥 쫓아 올라가니 사라졌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바람에 날리는 텃밭 멀칭 비닐을 잘못 본 건지 모르겠네요. 두 고양이가 만나지 못하게 하던지 만나면 중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요즘 정부와 의사들 힘겨루기처럼 중재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 두 번 사료를 넉넉히 주고 아내가 수시로 간식도 챙겨주는데 밥그릇 싸움할 이유가 없는데 평소 순한 수리가 왜 유독 검은 고양이만 밀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밥만 먹고 가는 다른 길냥이 두 마리와 친하지는 않지만 적대감도 없는데 유독 검은 고양이만 미워합니다. 하얀 장화 신은 멋쟁이 검은 고양이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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