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문제가 사회문제로 치부되면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노후빈곤, 질병, 고독 등 우려와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노인은 더 이상 사회의 주인공이 아니다. 드물게 은퇴 후에도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니어’(이상하게도 ‘노인’과 ‘시니어’는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데도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들을 접하게 되지만 그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아주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누구나 노인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누구나처럼 나 역시 ‘나이듦’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멋진, 노인으로 잘, 늙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매체에서 멋진 노인으로 살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소리를 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일과 문화와 관계 속에서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노인들을 주로 그린 작가가 있어 소개해 본다. 데스 브로피(Des Brophy), 영국 작가, 16세에 공군에 입대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으며, 이후 22년간 셰필드에서 경찰로 근무했다. 40대 초반에 마을에 사는 화가인 존 그리스미스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 차례나 초대되어 전시회가 열렸다. 올해 2월에 서울 갤러리에서 세 번째 전시가 열렸는데, 연장전시까지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전시회에서 거의 완판을 기록한다. 특히 병원 의사들이 그림을 많이 사간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아하! 하고 그 이유를 단박에 알게 된다. 우선,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일단 즐겁다. 심각하게 볼 필요없이 직관적으로 공감이 간다. 특별한 인물이 그려지거나 특별한 장면이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저 늘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 늘 경험하는 일상적 장면들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분들이라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유쾌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어르신’이 풍기는 근엄함과 지루함은 어디에도 없다. 진부한 표현으로, 어린아이같이 유쾌, 상쾌, 통쾌하다. 위 그림 <비오는 날의 데이트>에서는,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전방을 주시하면서 할아버지가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게 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이렇게 무심한 듯 멋지고 정겨운 부부가 있을까? 마주 오던 강아지가 내 마음처럼 부러운 듯이 바라본다. 비, 따위로는 이 부부의 데이트를 방해할 수 없다. ‘비’는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 주로 등장하는 배경이지만, 데스 브로피의 그림에서는 햇살 쨍쨍한 날의 경쾌함이 비를 뚫고 나온다. <행복>에서는 비가 내려도 비를 맞으며 우산을 빙빙 돌리면서 춤을 추는 할머니들의 푸짐한 뒷태가 흥겹다. 가운데 할아버지는 우산조차 없어도 개의치 않는다. ‘보약같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행복할 뿐이다. 노년의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멋쟁이들이다. 뒤태만으로도 행복한 표정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아직도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긴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본 우리들은 평범함의 위대함을 경험했다. 그의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평범하지만 특별하다. ‘그래, 괜찮아, 우리 옆에는 가족들이, 친구들이 있잖아,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남아 있어, 그러니, ‘나이듦’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순간순간을 즐기는 거야, 함께’ 또 한 가지 생각을 덧붙인다면, 데스 브로피는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생활인이었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늦은 나이에 그림을 배우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화지에 담아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의 스타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본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생업을 이어가면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생업에서 은퇴한 후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높다고 생각된다. 우리 함양군만 하더라도 사회복지관, 문화원, 각 읍면 자치센터 등 기관에서 많은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군민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시작은 소소하지만 이런 프로그램 수강의 과장에서 더 나아가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아 작가로 등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위로와 격려의 에너지가 널리 확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술은 제 기쁨이고 스트레스를 풀어줍니다. 저는 예술을 통해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요” 데스 브로피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라고 말한 것인데,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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