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문화 행사 또는 활동을 심층적으로 담는다. 교육과 문화는 지역의 잠재력이자 지역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대변하는 분야다. 이에 주간함양은 함양 안에서의 수많은 교육·문화 활동이 독자들에게 생생하고 매번 신선하게 체감될 수 있도록 ‘교육·문화 포커스’ 코너를 마련했다. 매월 둘째 주, 셋째 주 교육·문화 현장에 한걸음 더 들어가 담아낸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성역화 작업이 우리 세대에 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본을 만들어내면 후손들이 또 이어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백인종 사무국장이 지난해 12월28일 안의면 대원식당에서 열린 황석산성성역화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하며 남긴 인사말이다. 인사말 그대로 황석산성성역화추진위원회는 정유재란 당시 백성군 모두 옥쇄했지만 큰 병력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왜군의 전투력 대부분을 상실시킨 황석산성 전투를 재조명하고 성역화에 속도를 내고자 만들어진 조직이다. 함양군은 매년 황암사에서 황석산성순국선열추모위원회 주관으로 황석산성 순국선열 추모 제향을 봉행하며 황석산성 전투에서 장렬히 순절한 호국영령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전투이지만 역사적 가치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고 기존 학설 또한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고 황석산성성역화추진위원회는 주장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추진위원회는 지금도 성역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이에 주간함양은 지난 2월27일 추진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선호 황석역사연구소 소장과 안의면 황대마을 이장이자 교육학 박사인 백인종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황대마을에서 만나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걸음 내딛은 추진위원회위원회에서 황석산성 전투와 관련 오랜기간 공들여 연구를해온 사람은 박선호 소장이 유일할 것이다. 그는 1960년대 중학생 시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고향에서 일어난 큰 전투였던 만큼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고 한다. 40여년이지나 조중화 선생이 쓴 <바로잡은 임진왜란사>를 서점에서 접하면서 기존 학설과 배치되는 내용들에 충격을 받았고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새로운 윤곽이 서서히 잡혀갔다고 말했다. 이후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꾸준히 연구를 해왔고 그 과정에서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대첩>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추진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고향 후배인 백인종 사무국장과 더불어 황석산성 성역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백 사무국장은 “우리 박 선배님은 황석산성과 관련 연구를 정말 오랜 기간 해오신 분이다. 선배님의 연구활동을 지켜보면서 저 또한 고향 역사 작업에 동참하고 싶었고 추진위원회 설립까지 이어졌다. 현재 선배님 저서를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출판 작업과 성역화 방안 토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진위원회는 지난 2월27일 발대식 이후 첫 총회를 개최했고 성역화 추진·홍보·추후 관광자원화·재원조달 등 여러 방안을 위원들과 토의하면서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딛었다. “위대한 역사, 후손들에 제대로 알릴 것”추진위원회는 황석산성 성역화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기존 학설의 주장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말한다. 위원회는 참전 왜군 수, 맞서 싸운 백성군의 수 그리고 전투 결과에 있다고 강조한다. 박 소장은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은 왜군이 꼭 점령해 전투식량으로 탈취해야 할 목표점이었다. 왜군 7만여명이 1597년 8월14일부터18일까지 5일 동안 황석산성 전투에 참여하였고 7000여명의 백성군이 이에 맞서 싸웠다”며 “이 과정에서 왜군은 4만83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만7000명만이 간신히 살아서 전주로 이동했다. 물론 백성군은 7000여명 전원이 옥쇄했지만 왜군이 더 이상 전투할 능력을 상실하게 한 대승리의 전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황석산성 전투에서 서문을 담당했던 일본 장수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가문에 7만여명의 왜군이 황석산성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일합방 당시 일본인들이 참전 왜군 수를 2만7000명으로 축소 조작했다고 덧붙였다. 또 정유전쟁 당시 거창의 좌수였던 유명개 연보에 의하면 안음현, 거창현, 함양현, 합천현, 삼가현, 초계현, 산음현 등 7개현의 노약자 부녀자, 농민, 사냥꾼, 피난민 등 7000명 보다 많은 백성군의 인원이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도 밝혔다. 이밖에도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과의 관계 등 황석산성 전투의 영향력을 추진위원회를 통해 계속해서 설명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추진위원회의 말에 따르면 황석산성 전투는 그야말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대첩으로 주목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주장들을 바탕으로 추진위원회는 황석산성 전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앞으로 모색해나갈 계획이다. 백 사무국장은 “우리 이 황석산성에 대한 내력을 우리 함양군민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국민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선조들이 위대했다는 사실들을 더 알고 싶고 그 사실을 전하고 싶어서 추진위원회 설립까지 하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황석산성 성역화 작업의 당위성을 제대로 설명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역사는 민족의 영혼이다. 역사를 알아야 열정도 나오고 불의에 대한 분노도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황석산성 전투 또한 주목 받아야하고 역사적 가치를 더 인정받아야 한다. 황석산성 성역화 작업을 지켜봐 달라”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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