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농담과 그림자>에서 ‘나는 지루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지루한 사람이 되고싶다’에 동조는 없었지만 일말의 공감은 있었다. “맹목적인 믿음과 사이비 종교, 진영논리와 당파성에 매몰된 사람들, 가짜뉴스와 미디어, 거짓과 선동과 날조, 유사과학과 반지성주의, 거짓과 악의를 담은 말들, 그리고 수많은 음모론이 검색엔진의 편향성과 유튜브 알고리즘에 실려 끝없이 확대되는” 현실의 말들이 어지러워 자기는 그저 ‘주절주절 떠들지 않고 유쾌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은, 딱히 기억에 남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사람, 말없이 잠자코 앉아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그런 심심하고 지루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되고싶다’는 실패했다면서 뱉은 말들로 자책하는 밤들을 미야기한다. 세상에 난무하는 말들을 제 정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군들 그 문장에 공감하지 않겠는가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는데 그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도 각자의 편향된 견해에 대해서는 굳건한 주관성을 가지고 있고 그 주관이 대부분 유튜브와 일부 미디어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것이 감지될 때는 ‘지루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문장이 반어법으로 읽혀 탄력을 받던 것이다. 어느쪽으로든 심하게 기울어지면 판단은 한쪽으로 치우쳐 객관성을 잃고 정확성이 결여된다는 점에서 편향은 위험한 일이며 그 위험은 인간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유튜브에 의해 편향된 사람들은 맹신이 지나쳐 유튜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자기 의견처럼 수용해서 광분하기도 하고 거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경계에 서있거나 중간에 서서 냉철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섣부른 말을 하지않으며 지켜보는 편이다. 인생조언을 하는 어떤 스님의 유튜브를 구독하면서 ‘좋은 말’이라며 내게 전하는 친구에게 “결혼생활과 멀리있는 스님이 부부의 문제를 어떻게 조언해? 자기 인생은 자기가 판단해서 사는거야. 조언을 왜 구해!” 라고 했다가 친구에게 질타를 받은 경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좋으면 나도 좋다고 해야 하나? 싶었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문제가 친구의 눈에는 보이지않는 것 같아서 “그게 나야” 하고 말았다. 동조를 경계하고 한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텍스트를 통헤 종종 발견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지러운 영상과 말들의 생산지인 유튜브에 시시콜콜한 잡담을 비롯해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리는 정체불명의 유튜브와 이쪽저쪽 서로에 대한 조롱과 비난 등, 잡다함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보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걸까. 양식과 지성이 결여된 거짓의 얼굴을 한 썸네일을 버젓이 올려놓은 유튜브를 힐끗 보며 잡스러움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 <농담과 그림자>의 ‘지루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그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그 심정이 이해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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