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재미로 하는 것이니 취미생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곶감부터 시작해 토종벌꿀, 밤, 호두, 더덕 등 다양한 농·축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김종선씨. 그에게 이 많은 일들은 노동이 아닌 놀이에 가깝다. 소득도 상당하다고 하니 이만큼 행복한 취미부자가 있을까. 보통 상이한 여러 종류의 농·축산물을 더불어 생산하다 보면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많아 전문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김종선씨는 다르다. 특히나 곶감과 토종꿀 생산에 있어 김종선씨는 전문가다. 가장 주력하고 있는 곶감 생산과 관련해서는 취재진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동, 광양, 김천 등 전국을 돌며 곶감 농사를 짓고 다양한 품종을 경험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안착한 그는 지금도 곶감 생산과 관련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 다. 곶감 생산 또한 그에겐 하나의 놀이라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색 관리부터 습도 대응, 손질 과정, 덕장 관리 등 기사로 풀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체계적이고 엄격하다. 괜히 김종선씨의 곶감이 유명한 게 아니었다.   “전국을 돌며 다양한 품종들을 경험했는데 맛은 함양 고종시가 제일 좋더라고요. 오랜 기간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실패 과정들이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함양에 머물면서 좋은 곶감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안정적이지만 더 좋은 곶감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김종선씨와 곶감의 만남은 특별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 다양한 사업을 하며 살아가던 그는 20억원을 손해 보면서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모습을 안타까워한 동서가 곶감 농사를 권유했고 산청에서 본격적으로 곶감을 배우기 시작했다. “엄청 어려운 나날을 뒤로하고 산청으로 가면서 곶감과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곶감을 이끌어가는 분들을 찾아가서 일도 도와주고 과정들을 배우면서 살아갔죠. 그러던 중 당시 천사령 군수님 시절인 함양에서 곶감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경매장도 생기고 활성화도 되면서 소득도 괜찮아졌습니다. 그 기점으로 곶감을 20년 정도 하고 다른 종류의 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김종선씨를 살린건 곶감만이 아니었다. 한참 어려운 시기 술로 보냈던 날들은 시간이 지나 위암으로 번졌고 수술을 하면서 신체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위기를 겪었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당시 친구가 보내준 하고초 꿀은 아픈 그를 다시 일으켰다. 위암 완치 판정까지 받자 그것을 계기로 꿀에 관심을 갖고 천연꿀도 더불어 시작하게 된다. “의사님으로부터 완치라고 축하드린다는 말을 듣자마자 앞으로 죽는 날까지 산에서 천연꿀을 계속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죠. 그래서 지금도 좋은 꿀을 생산하기 위해 매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취미부자로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김종선씨. 그 시절들과 비교하면 지금은 모든 일들이 흥미롭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이제 겨우 편안히 숨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집사람과 함께 힘닿는 데까지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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