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교수가 쓴 ‘과학 콘서트’에는 ‘웃음’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웃음에 대한 생리학적인 연구들이 밝혀낸 핵심 연구 결과는 한 마디로 ‘웃음이 명약이다’라는 서양 속담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영화 <패치 아담스 Path Altims>(1999)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주장하듯이, 웃음은 15개의 안면 근육을 동시에 수축하게 하고 몸속에 있는 650여개의 근육 가운데 230여 개를 움직이게 만드는 ‘자연적인 운동’이며 몸의 저항력을 키워주는 명약이다.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의대 리버크와 스탠리 탠 교수팀은 성인 60명을 대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의 혈액과 한 시간 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한 후의 혈액을 비교하였더니, 코미디 프로그램 시청 후 세균에 저항할 수 있는 백혈구의 양은 증가하고, 면역 기능을 둔화시키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체내 독성 물질과 싸우는 자연 살해 세포(NK; natural killer cell)의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자주 웃는 사람이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나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훨씬 강하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웃음이 명약”이라는 속담을 실감 나게 해 주는 중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많이 웃을수록 통증에 대한 내성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에 웃음은 천연 진통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픈 사람일수록 웃음 되찾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웃음은 혈류를 증가시키고 혈관 확장을 촉진 시켜 혈압을 낮추기 때문에 심혈관 계통의 질병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웃음은 산소 섭취량을 증가시키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서 인지 기능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집중력과 창의성을 높이고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이는 그 누구보다 고3 수험생들에게 더욱 웃음이 절실함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공부도 공부지만 공부에 찌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웃음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삶의 환경이 우리의 입에서 웃음을 빼앗아 버린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웃음기가 많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갑진년 새해를 희망차게 시작한 지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고 있지만 웃을 일보다는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게 할 만한 일들이 천지에 널려있다. 웃음은 고사하고 오히려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웃지 못할 세상에 못내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그럴수록 웃음을 찾아야 한다. 빼앗긴 웃음을 찾아내고 기어코 웃어야 한다. 왜 그런가? 웃음을 포기하기엔 우리가 입을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웃을 것인가?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웃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한때 회전근개 파열 때문에 통증클리닉에 여러 번 내원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의사에게 다음 진료 때까지 실천해야 할 숙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숙제는 다름이 아니라 고장 난 어깨를 보완해 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 숙제는 꾸준히 하고 있는 편이다. 때로는 하기 싫고, 귀찮아도, 억지로라도 해야만 문제없이 어깨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웃기 싫어도, 웃을 일이 없어도, 일부러 웃고,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숙제한다는 생각으로 웃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근육이 붙고, 삶의 면역력이 올라간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의 뇌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지 못한다. 예컨대 실제 레몬을 먹지 않고 먹는다는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입 안에 침이 고이고 신맛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뇌는 웃을 일이 있어서 웃었는지, 억지로 웃었는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웃기 싫어도, 웃을 일이 없어도, 억지로 웃는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그 웃음에 반응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삶의 환경이 웃음을 빼앗아 버리고,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억지로라도 웃는 연습을 하게 되면 웃음의 순기능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간혹 교회에서 설교하기 전에 교우들과 함께 일부러 웃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10초 동안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박장대소하는 시간을 가진다. 물론 교우 중에는 웃음에 인색한 사람도 있고, 삶의 형편이 웃을만한 처지가 아닌 사람도 있다.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웃음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라도 웃게 만든다. 그러나 일단 한바탕 신나게 웃고 나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무표정하던 교우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눈빛이 달라지고, 설교 시간이 한결 즐거워졌음을 느낀다. 억지로 웃었지만, 그 결과는 상상이었다. 과연 웃음은 명약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약은 먹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웃자! 웃을 일이 없어도, 웃기 싫어도, 우울해도 웃어보자! 그 결과는 상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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