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말부터 경남 인재평생교육진흥원 평생학습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엊그제 토요일 마산도서관을 찾았다. 올릴만한 기삿거리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1층 로비에서는 마침 팝콘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행사냐고 물으니 겨울방학 특별 이벤트로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딱 한 시간 동안 팝콘을 나누어준다고 한다. 팝콘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이 내용을 기사로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얘들아, 여기 한번 보자. 하나, 둘, 셋, 찰칵!” 나도 얼른 줄을 서서 팝콘 한 컵을 받아 들고 향기를 맡았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팝콘 하나를 들고 입속으로 넣었다. 행복감이 온몸으로 퍼진다. 팝콘이, 도서관이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도서관 관계자의 소개로 ‘한동일 교수의 인문학 강연’이 오후 2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연 듣기를 좋아하는 나는 일단 그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놀라웠다.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교회 법학 박사,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로마나 변호사, 서강대학교 라틴어 수업 강의, 20여 년간 카톨릭 사제로 사역 후 사직, 교수, 작가, ‘라틴어 수업’ 100쇄 인쇄... 그의 이력엔 범접하지 못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글을 쓰는 이의 로망! 나는 100쇄 인쇄라는 단어에 관심이 급발동하여 그의 강의를 듣기로 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훈의 ‘광장’, 안도현의 ‘연어’,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류시화의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받지 않은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이것은 강의를 기다리면서 내가 찾아본 작가와 그들의 저서이다. 한 번쯤 들어본 작가이고 책일 것이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100쇄 이상 인쇄가 된 책. 스테디셀로 많은 사람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린 작가라 시집을 포함해서 개인 저서 두 권을 겨우 냈지만 모두 1쇄에 지나지 않는데 이런 책들은 100쇄라니! 벌어진 입을 다물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강의 시간이 되자 마산 도서관 3층 80석의 무학전당에는 신청자들이 속속 자리를 채운다. 강의 제목이 ‘란티어와 배움의 철학’이라 어려운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조금 일찍 온 한동일 강사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하더니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그의 강의에서 그는 라틴어가 사용되었던 나라와 라틴어의 기원,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강의 핵심은 긍정 마인드와 인내 그리고 성인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긍정의 마인드로 자기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나를 살리는 1분’ 과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또 상대를 복이라고 생각하면 미운 사람도 밉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여겨져 좋은 결과를 맺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고의 프로필을 가진 그도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는데 그때 그가 선택한 것은 진공관이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진공의 상태로 들어가 고요를 느끼며 책을 쓰다가 20년 후 다시 세상에 나오니 나쁜 것은 사라지고 대가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통념을 깨는 ‘성인의 공부’는 흐르는 물과 같은 것, 결국 나를 보아야 하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삶을 바탕으로 토해낸 그의 강의에서 긍정의 마인드와 인고의 긴 세월이 그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울컥했다. 강연이 끝나고 여러 사람이 말했다.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동적이었다” 특히 와이프가 강사님 팬이라서 서울에서 달려왔다는 젊은 부부의 열정은 한동일 강사의 강의가 얼마나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나 이룰 수 없는 100쇄 인쇄 기록을 가진 저자 한동일!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를 롤 모델로 삼아보리라! 마산도서관 문을 나서는 내내 강연의 감동과 100쇄 인쇄라는 단어의 여운이 눈 앞에 펼쳐진 키 큰 나무의 키만큼이나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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