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라꽃은 무궁화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를 손꼽으라면 어떤 나무일까요? 아마도 열에 여덟아홉은 제일로 소나무를 떠올릴 것입니다. 애국가 2절 노랫말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를 빗대어 민족기상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한겨울 맹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푸르고 당당한 모습을 띠어서 올곧은 기상 곧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했습니다. 조선 초기 충신 매죽헌 성삼문의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시조는 충절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매죽헌 자신과 동일시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조를 읊고 있습니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으로 의인화하여 이들이 지닌 속성을 인간의 덕으로 환원해서 예찬한 연시조) 중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 시조는 엄동설한 눈서리를 이겨내는 솔의 절개를 흠모하면서 고산 자신의 벗을 삼고자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흔하디흔한 소나무는 배달겨레와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솔과의 인연은 맺어집니다. 사립짝문에 볏짚으로 금줄을 엮어 매고 솔가지를 꽂아 갓난아이를 해롭게 하는 귀신을 쫓았습니다. 아이는 뒷동산 뫼봉재 아름드리 솔밭에서 사시사철 온종일 동무들과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놀면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초가·기와집 대들보 기둥은 소나무를 깎아 얹었으며 육간대청 툇마루에는 결 고운 송판을 다듬어 깔았습니다. 여름철 습하지 않고 시원한 감촉이 일품입니다. 은은한 송진 냄새로 벌레가 타지 않는 대들보와 서까래는 한옥의 자랑거리입니다. 봄·여름·갈·겨울 솔갈비 걷어다가 불 피워 구들방을 데워서 따뜻하게 잠자고 가마솥에 밥 안치고 냄비에 된장국 끓여 먹고 살았습니다. 이래저래 한평생 이승에서의 삶을 다하고 나면, 소나무로 만든 관에 모셔 저세상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으로 우리네 삶과 소나무와의 인연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선비정신 이어가는 함양중학교를 상징하는 교목은 소나무입니다. 교정 곳곳에는 명품 소나무가 학생들과 함께 쑥쑥 자라나고 있습니다. 48여 년 전 함양중학교 재학시절, 교문은 서쪽 필봉산 방향으로 나 있었습니다. 약간 경사진 교문을 지나서 운동장 입구 ‘청소년들이여! 꿈을 가져라’ 돌탑 앞에 이르면 아담한 소나무 두 그루가 까까머리 우리들을 반겨주었습니다. 그때는 어린 소나무였는데 지금은 많이 자라서 사람으로 치면 미모의 건강한 청년 모습입니다. 가히 국보급 소나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반송입니다. 함양중학교는 1970년대 후반 목조 건물이었던 구교사를 허물고 뒤로 물려서 신교사를 짓고 허문 자리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두류체육관은 1990년대 중반에 지었습니다. 서쪽을 향했던 옛 교문은 남쪽 운동장 앞쪽으로 새로운 길 함양배움길이 나면서 비로소 지금의 명품 정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근무했던 선각자들이 학교 조경사업으로 본관 앞 교정과 두류관 앞 배움길 가장자리와 비룡 향학로를 따라 소나무를 정원수로 심은 것은 현명한 판단과 함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때 갖은 정성으로 심었던 어린 소나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장성한 소나무가 되어서 재학생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줍니다. 이제 함양중학교 교정을 대표하는 풍광으로는 늘 푸르름을 자랑하는 당당하고 멋진 소나무가 떠오릅니다. 덤으로 한여름 무더위나 한겨울 북풍한설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 등하굣길 학생들을 맞이하고 배웅합니다. 그래서인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선비정신 이어가는 함양중학교의 학풍은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 함양중학 건아들이여! 교정의 늘 푸른 소나무처럼 당당하고 슬기로운 다볕골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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