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도,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멍 때린다’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렇게 혼자서 마냥 가만히 있노라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어떤 평정심(平靜心)이 일어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무언가 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본질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좋습니다. 내가 이런 시간을 좋아하게 된 것은 꽤나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혼자 있는 즐거움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내가 처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개종한 때였습니다. 그때는 십대 후반의 나이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미 그때도 혼자 있음을 즐겼습니다. 중학생 시절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머님이 돌아가셨던 상황이었습니다. “왜 인생이 이리도 힘이 들까?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혼자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반인들은 혼자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는 감수성이 예민한 그 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은 것은 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매이지 않는 채로 나 자신만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늘 무엇인가를 행하여야만 좋은 사람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평화와 즐거움을 누리는 때는 무언가를 행할 때(Doing)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있을 때(Being)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의 신앙목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 일을 행하려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은 무언가를 행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냥 신앙의 자리에 머물고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의 진면목은 Doing이 아니라 Be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들은 이야기인데요, 인디언들은 사냥이나 이동을 할 때 계속해서 열심히 뛰어가다가도 갑자기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너무 빨리 달려서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돌아온 그 길을 보며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생각이 나지 아니 할 때가 있습니다. 바빠서 일수도 있지만 때론 무언가에 집착해서 정신을 빼놓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러다보면 하루하루가 재미도 없고 내 삶에 정작 나 자신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일상가운데서 저기 따라오는 나의 영혼을 위해 잠깐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열심히 달리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의미도 모르고 달리는 것보다 한번 씩 쉬어가며 나의 영혼을 기다리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혼자 있으면 느끼게 되는 감정을 ‘고독’이라고 했습니다. 고독은 마음의 눈물이며 존재의 신음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독할 때 찾아오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고독은 존재를 벌거벗깁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일컫는 세잔은 파리에서의 낭패와 실패로 귀향한 은둔의 결과 추앙받는 화백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가운데서 진리가 보이고 열린 하늘이 보이게 됩니다. 혼자되는 시간이야말로 비로소 자신의 영혼의 발돋움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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