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0년 동안 이 땅에서 개인의 자유가 있고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세워진 적은 일찍이 없었고, 구한말 조선은 국민의 70%가 노비인 철저한 신분계급사회였다. 국민 10명중 7사람이 노비로 살아가고 있었으니 자유와 인권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특히 여성의 인권은 박탈되어 국가발전을 가로막은 원인이 되었다. 엄마가 지혜로워야 아이도 지혜롭게 자랄 수 있기에 여성의 참여권을 막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지금 농촌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들은 이러한 배우지 못한 설움을 달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개인의 자유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바로 해외에서 복음을 들고 왔던 젊은 선교사들이었고 그들은 무지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 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독립된 나라를 이끌 재목으로 키워갔다. 비록 나라의 주권은 잃었지만, 한국교회는 민족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으로, 밤바다를 지키는 등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구한말에 들어 온 복음은 각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권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평생 노비로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개인의 자유가 있음을 알게 되고 또한 예수님 말씀을 담은 성경을 통해 비폭력 독립운동인 3.1운동을 낳게 하였다.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은 각처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연계하여 벌인 독립운동이다. 한국교회가 연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전국적인 동시다발 만세사건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1907년에 일어난 평양 대부흥은 전국에 교회를 세우게 하였고 말씀으로 깨어난 사람들은 나라사랑에 대해 눈을 뜨고 자유를 외친 것이다. 만약 이런 복음이 없었다면, 그리고 복음을 전한 선교사가 없었다면, 중국처럼 왕권시대에서의 노예근성으로 저항운동은 꿈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나라와 주권을 잃은 이 땅에 3500명의 서양 선교사는 생명의 씨앗이 되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한 예로 미국인 헐버트 선교사는 1905년 고종 특사로 미국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연 사람이었다. 1886년 조선에 선교사로 와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는 한글을 익히고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된 이준·이상설·이위종의 활동도 도왔다. 일제는 이를 트집 잡아 고종을 퇴위시켰다. 이때 미국으로 쫓겨 간 헐버트는 42년 뒤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가 잠든 양화진 외국인 묘지의 비석 글귀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새겨져있다. 특별히 미국감리교단 소속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을 세워 “민주주의, 자유, 인권, 기독교신앙과 아울러 여성인권과 평등사상에 대해 강조하고 문맹 퇴치와 성경보급을 통해 사람들을 누구에게 속박을 당하는 존재가 아닌, 인권을 갖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도록 교육에 힘썼다. 여기에서 그는 장래에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이승만이라는 청년을 만나 그의 세계를 넓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펜젤러가 감옥에서 순교하고 나서 같은 미국인이었고, 의료선교사로 온 스케랜턴 여선교사에 의해 미국으로 도미하여 선교사가 추천한 한국인 학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미국의 선진 정치와 경제와 제도를 배우면서 미국 같은 자유가 보장되고 번영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청사진을 만들게 되었고 해방을 맞은 이 나라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꿈꾸며 경험하고 배워온 그리고 꿈꾸던 나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국민 스스로가 주인인 나라인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6.25전쟁에서 국민반란을 일으켜 적화하고자 했던 김일성과 박헌영의 계략을 원천 차단함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중국은 이것을 하지 못해 중국 전체를 장악한 국민당이 모택동이 이끈 소수의 공산당에 무릎을 꿇고 대만으로 피난 가게 된 것은 공산당에 속은 국민들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이었다. 토지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공산화 될 뻔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하지만, 그는 전 국민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자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 하겠다고 약속하고 스스로 물러나 하와이로 가서 조용히 여생을 마친 대통령이다. 아시아 독재국가 중에 이렇게 국민이 반대하니 물러가겠다고 한 독재자와 나라가 있었는가? 대부분 독재국가에서는 총칼로 무력 진압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았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제 이승만 대통령에 붙어있는 독재자라는 죄명을 떼어버리고, 우리가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초대 대통령으로 인정하여야 자랑스럽고 발전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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